매일신문

[야고부] 꼼수와 감동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흔히 말한다.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투혼과 예측을 불허하는 재미, 냉혹한 승부 등이 빚어내는 진한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꿈의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이 그 어느 스포츠 이벤트보다 감동의 울림이 큰 것은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국가를 대표해 열전을 치르면서 갖가지 화제를 낳고 숨겨진 이야기 또한 많아서다.

물론 관중은 승패에 열광한다. 그러나 승리와 패배의 방정식은 단순하다. 이런 흑백의 결과에서 관중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결말에 대한 후련함이나 만족감이 고작이다. 불굴의 의지와 인간성, 명예 등 미덕은 사실상 승부의 이면에 가려져 있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불거진 오심 사태와 승부 조작도 승패를 더 중시한 나머지 승부 너머의 인간성과 감동을 놓친 결과다. 관중은 몇 초, 몇 점이라는 결과의 경이로움에 끌리는 게 아니다. 선수들의 굵은 땀방울에 녹아 있는 스토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감동하는 법이다. 이기든 지든 선수들의 땀과 눈물은 명예와 스포츠맨십의 다른 이름이다.

인종차별 발언으로 스위스 축구 대표팀에서 퇴출된 미첼 모르가넬라의 사례는 명예를 저버리면 선수 생명도 끝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사건이다. '져주기' 꼼수를 부리다 실격된 중국'한국 여자 배드민턴 복식팀이나 고의적인 비기기 의혹을 받고 있는 일본 여자 축구팀도 각자 사정이야 어떻든 결국 스포츠 정신과 명예를 더럽힌 행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스포츠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심판들의 오심과 국제경기연맹의 무책임한 경기 운영이다. 신아람 선수의 '멈춘 1초' 사태는 스포츠계가 명예보다는 권위가 먼저라는 잘못된 의식에 붙들린 결과다. 판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이익을 주겠다며 선수를 협박한 국제펜싱연맹의 태도에서 숭고한 스포츠 정신과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시간계측기가 '빅벤'의 1초처럼 둔중해서 그렇다는 풍자가 더 솔직하지 않은가.

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은 '근대올림픽의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고 강조했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가 아니라 참가에 있다는 그의 말도 승패보다는 불굴의 자세와 노력이 더 가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성숙한 스포츠 정신이야말로 스포츠를 진정 각본 없는 드라마로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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