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외국인이 본 대구와 한국의 정치

프랑스의 정치가 토크빌은 1835년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펴내 약관 30세에 유럽 지성의 중심에 섰다. 10개월간의 짧은 미국 여행을 통해 미국인도 모르고 있던 미국 사회의 특징과 민주주의의 본질을 꿰뚫는 명저를 남긴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녀가 쓴 '국화와 칼'은 일본 문화의 속성을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국화와 같은 우아함의 이면에 칼과 같은 비정함이 있다는 일본의 극단적 이중성을 분석했다. 이어령 씨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도 같은 반열의 명저이다. 이처럼 외부자의 직관이 그 사회의 특성을 더 잘 포착하는 경우는 왕왕 있다. 어항의 구조가 바깥에서 더 잘 보이는 이치와 같다.

지난달 히로시마 시의원이 필자가 근무하는 대학에 연구인턴으로 왔다. 3선의 젊은 의원으로 학위 과정을 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문제와 지방정부 및 민간 교류를 통한 한일 간의 신뢰 구축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 정치와 한일 관계에 관심이 깊다. 대구시와 의회를 방문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했다. 그리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거론되고 있는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한 자료 수집도 했다.

11일간의 인턴 기간 중에 그는 대구와 한국 정치에 대해 몇 가지 논평을 했다. 맨 먼저 대구의 선출직 정치인들이 새누리당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대구시와 의회를 방문한 후, 그는 통역을 도와준 시 직원에게 "전부 새누리당이면 의회가 시장을 어떻게 견제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래도 우리 시의회는 시장에게 할 말은 다 합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정책과 주의 주장을 같이하는 한 정당에서 "할 말은 다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구에서 새누리당과는 다른 의견이나 목소리는 누가 대변하는가, 대구시의 예산과 행정은 누가 감시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는 한국의 대통령선거에도 관심이 많았다. 안철수 현상과 박근혜의 지지율을 보고 질문을 했다. 박근혜의 대표적인 정치적 업적이 무엇이며, 그의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무엇인가, 정당의 배경이 없는 안철수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같이 있던 대학원생들로부터 "박정희의 딸이기 때문에", "안철수의 생각은 우리와 같기 때문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로서는 쉽게 이해가 안 가는 듯했다. 한일 관계를 염두에 둔 그는 각 정당의 대통령 경선 후보자들의 외교 안보 정책을 알고 싶어 했다. 그는 '안철수의 생각'을 구입했다고 한다. 다른 후보자의 생각과 정책을 알 수 있는 책을 소개해 달라고 했으나, 과문한 탓에 마땅히 소개할 책을 찾지 못했다. 몇몇 유력 후보자의 캠프에 전화를 해서 정책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으나, 한결같이 '준비 중'이라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신문 기사를 찾아서 조각 맞추기를 했으나 아귀가 잘 맞지 않았다.

그가 본 대구와 한국의 정치는 확실히 이상하다. 대구시의 일당 지배 체제, 안철수와 박근혜만 있는 한국 정치에서는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 정당정치는 여당과 야당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대구처럼 새누리당 일당 독식 체제에서는 정당은 액세서리일 뿐이다. 안철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민주당의 경선은, 안철수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위한 마이너리그에 지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개인의 추대위원회처럼 되어 있다. 경선 현장에서 박근혜를 비판하는 후보는 야유를 받는다. 그가 연설을 끝내면 당원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후보자 간의 소통과 경쟁이 사라진 새누리당의 경선 현장 광경이다. 그가 보지 못한 통합진보당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은 신-구 당권파의 극단적 대립으로 '분열퇴보당'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본에 돌아가서 한국과 대구의 정치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외국인이 봤을 때도 알기 쉬운 정상적인 정치가 한국에서는 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이것이 흔히 말하는 한국 정치의 역동성은 아닐 것이다.

이성환/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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