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현수의 시와 함께] 는(은) & 이(가)/정끝별

당신은 당신 앞에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

나는 나 앞에 '는(은)'을 붙이기 좋아한다

당신은 내'가'하며 힘을 빼 한 발 앞서고

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물러선다

가령 이런 식이다

강'이'하면서 강을 따라 출렁출렁 달려가고

강'은' 하면서 달려가는 강을 불러 세우듯

구름이나 바람들에게도 그러하고

산'이' 하면서 산을 풀어주고

산'은' 하면서 산을 주저앉게 하듯

꽃과 나무와 꿈과 마음에게도 그러하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문이 되어 바람에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 하면서 거울 되어 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며 보는 당신은 '이(가)'로 세상과 놀고

보면서 못 보는 나는 '는(은)'으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늘 멀리 떨어지려는 척력이고

내 혀끝은 늘 가까이 닿으려는 인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의 노래를 토해다오

사랑을 완성해다오

시인은 모국어의 미묘한 느낌과 의미를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시인에게는 모국어를 지키고 발전시킬 막대한 임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이 시는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은(는)'과 '이(가)'라는 조사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가)'라는 말이 대상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비하여, '은(는)'은 그 가능성을 어떤 제약 속에 둔다고 말합니다. 그러고 보니 '강이 …'라는 말에 비해, '강은 …'이라는 말은 '강은 이래야 된다'는 식의 강요를 지닌 듯합니다. 이 두 말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 일, 그것이 사랑이겠지요.

시인'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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