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구로다의 생각

또 '구로다'다. 일본군 위안부나 교과서, 독도 등 한일 간 현안 문제가 터지면 감초처럼 나서서 한국인의 속을 확 뒤집어 놓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관련해 구로다는 어저께 CBS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독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내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것"이라며 토를 달았다. '인기 없는 대통령이 임기 말 써먹은 정치 쇼'라는 상투적인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그의 셈법대로 이 대통령의 지지도가 9%가량 올랐다니 우연의 일치치곤 뒷맛이 개운찮다.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 간판에서 알 수 있듯 구로다의 발언들은 일본 중심주의적 사고를 충실히 대변한다. 한일 양국 나아가 동북아 역사문제와 정세를 관통하는 일본식 논리의 틀이 수많은 구로다들에 의해 생산되고 의식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로다의 생각에서 진실과 본질을 외면하고 드러난 현상에 대해 현미경 들여다보듯 무의미한 계산만 되풀이하는 일본 언론, 지식인들의 '몰아가기' 수법을 재확인할 수 있다.

몇 해 전 산케이신문 등 몇몇 극우성향의 언론은 대마도의 한국 관광객 증가와 부동산 투자 열기에 대해 "국가의 (안보) 요충지가 벌레 먹은 것 같이 침식되고 있다"며 위기감을 조장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이 같은 일본 언론과 지식인들의 현실인식이 어디로 귀결되고 독도 문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뻔하다.

한상우 교수(국민대)는 '일본 지식인과 한국' '제국의 시선' 등에서 일본 지식인들이 아시아 평화에 끼친 악영향과 그 소아병적 사고, 부정직한 역사의식의 폐해를 고발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아시아인들을 살육한 원죄를 종전 60년이 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애초 속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다. 그러니 국가 체면 운운하고 '일왕 사과' 발언에 대해 무례하다며 가당찮은 역성을 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대해 눈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도 맹목이 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독일 리하르트 바이츠제커 대통령이 1985년 종전 40주년 기념식에서 한 유명한 참회연설에 나온다. "유대인들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으며, 계속 기억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기억 없이 화해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고 그는 말했다. 구로다와 같은 일본 지식인들에게 들려주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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