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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흥렬 에세이 산책] '~라'에 관한 생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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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서점에 간다. 꼭 필요한 책이 있어서 가기도 하지만, 어쩌다 약속이 어그러져 적당히 시간을 때워야 할 때에도 찾게 된다. 무료를 달랠 겸 새로운 글감을 만나고 기발한 착상(着想)을 떠올리기에는 서점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아서이다.

오늘도 S서점에 들렀다. 인터넷 서핑을 즐기듯 판매대를 옮겨 다니며 이 책 저 책에 관심을 보낸다. 크기며 판형도 천차만별이거니와 장정도 각양각색이어서 눈이 지루하지가 않다.

불현듯 번쩍하는 수확 하나를 얻고는 속으로 이거다 외치며 무릎을 쳤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된 책들은 상당수가 '~라' 식의 제목을 달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찾아낸 것이다.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사람처럼 나는 그만 마음이 바빠졌다.

이것저것 손에 닿는 대로 집어선 휘릭 휘릭 책장을 넘기며 훑어본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비단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의 세부 목차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같이 '~라' '~라' '~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라'의 의미를 사전에서는 어떻게 규정해 두었을까.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청자나 독자에게 책 따위의 매체를 통해 명령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혹시나 싶어 펼쳐본 국어대사전은 역시나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그렇다. 굳이 사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라'에는 어디까지나 지시 혹은 명령의 뜻이 담겨 있음은 누구나 익히 아는 사실이 아닌가.

'○○○는 과감히 탈당하라' '세종시 원안 사수하라'

'~라'를 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붉은 피켓을 앞세우고 목에 핏대를 올리며 거리를 행진하는 투사들의 분노에 찬 눈빛이 떠오른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성공하려면 습관을 바꿔라' '사랑하라, 끝까지 사랑하라' '가슴 뛰는 상상을 즐겨라'…, 이른바 베스트셀러라고 불리는 책 가운데 제목이 '~라'로 된 것들이 태반이다. 소설류, 에세이류는 물론이고, 특히 처세술에 관한 책에서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저는 뭐가 그리 잘났다고 이래라저래라 지시하고 명령한단 말인가.

차라리 '~자' 식이었다면 반감은 덜할지 모르겠다. '~자'라는 표현은 '~라'보다는 훨씬 완곡한 어법이어서, 동의는 구하고 있을지언정 강요하는 인상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묘한 것 같다. 직접 마주 보고 대화할 때는 지시 투나 명령 조엔 반발심을 가지면서, 어찌하여 책에서는 이런 표현법이 독자들에게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아무리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 보아도 내 아둔한 머리로는 도무지 까닭을 알지 못하겠다.

누가 속 시원히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실 분 어디 없을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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