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였던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는 1948년 스탈린주의 정권이 수립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를 방문해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누구도 웃지 않는 나라에서 왔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어둠 속에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행복의 빛을 발견했다." 아마도 루마니아 인민들은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그는 이듬해 소련이 점령한 헝가리를 방문해서도 똑같은 헛소리를 지껄였다. "몇 년 안에 행복은 최고의 법률이 될 것이고, 기쁨은 나날의 지평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 반대로 흘러갔다. 억압과 숙청이 최고의 법률이 됐고 절망과 공포가 나날의 지평선이 됐다. 7년 뒤인 1956년 이에 항거하는 인민들의 봉기가 일어나자 소련은 탱크로 이를 쓸어버렸다. 그러나 좌파 지식인들은 소련이 아니라 헝가리 봉기를 매도했다. "우파 정신이 헝가리 봉기의 특징이다." 사르트르의 말이다.
1960년대 서독 좌파 학생운동의 전설적 지도자 루디 두치케도 정신 못 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체코 자유화 운동의 절정기였던 1968년 '우애'에 입각해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프라하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원적 민주주의가 진짜 적이다." 이 말에 프라하 대학생들은 당황했다.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것이 다원적 민주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들을 이런 몽매에 묶어둔 것은 '역사에 대한 책무'였다. 공산주의는 미래이며 공산 정권의 폭력은 역사의 진보를 얻는 비용으로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역사와 미래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없다. 공산주의 폭력을 지지한 사르트르와 절교한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그들의 죄악을 이렇게 꾸짖었다. "역사에 대한 책임은 사람에게서 인류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해준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 후보가 사퇴했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집권은 국민에게 재앙이자 역사의 퇴행"이라고 했다. 적어도 그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역사가 아니라 현재 북한 인민 곧 사람에 대한 책무를 방기한 죄를 지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역사에 대한 책무'는 참으로 편리한 핑곗거리다. 더 나은 미래를 내세워 지금 저지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죄를 합리화한다. 그의 말에 역사가 이렇게 꾸짖는 듯하다. "네가 역사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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