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목 이책!]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

길들이는 건축 길들여진 인간/이상현 지음/효형출판

이 책은 독특하게도 건축과 인간 사이 '길들여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건축의 내부에 사람들을 교묘히 길들이려는 정치'사회학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건축은 공간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편파적인 속성이 있다. 그는 '길들임'과 '길들여짐'이라는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양반집에서부터 궁궐과 도성, 현대 도시와 현대 건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건축의 실체를 역설한다.

조선시대 양반집들은 길들이기의 전형이다. 하인이 거주하는 행랑채 마당에서 양반 공간인 사랑채를 바라보면 주인의 발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은 하인의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다. 공권력이 정점에 이르는 영역인 궁궐은 길들임의 건축적 장치가 총동원되었다.

건축이 이처럼 길들이기의 도구로 사용돼온 한편 그런 의도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 또한 꾸준히 해왔다. 독일 건축가 한스 샤로운이 설계한 베를린필하모닉 콘서트홀은 주조 이미지도 없고 전혀 콘서트홀처럼 생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낮아보이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질서정연하게 한 곳을 바라보는 공간 구조가 나치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되살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랭크 게리의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역시 건축의 길들이기에 강하게 대항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폭동 이후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순화하기 위해 지어졌다. 건축가는 기존의 그 무엇과도 닮지 않은 새로운 건축 형상을 지었고, 이는 과거의 무엇을 떠올리며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피하기 위해서다.

서로 길들이려는 건축물과 인간, 이를 거부하는 건축의 이야기는 삶을 읽어나가는 또하나의 새로운 키워드다. 310쪽, 1만8천원.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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