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간월재를 가다

올라갈 때는 '헉헉', 멋진 경치에 피로 '말끔'

지난해 11월. 바람이 몹시 차갑게 불던 날 간월재에 갔다.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워낙 힘들다고 해서 망설였던 곳이었다. 친구가 "너 같으면 충분히 갈 수 있어"라고 용기를 줬다.

울산시와 밀양시의 경계능선에 있는 간월산(해발 1,137m)과 신불산(1,159m) 중간에 있는 간월재는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국내 최대의 억새탐방로로 유명한 곳이다.

간월재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등산객들이 많았다. 올라가는 첫 입구부터 오르막인 난코스였다. 이렇게까지 힘들 줄이야? "너는 갈 수 있다"고 말한 친구가 미웠다. '다음에 그 친구를 만나면 가만히 안 둘 것'이란 분노를 되새기며 씩씩거리면서 자전거와 산행을 했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었다. 올라가는 등산객들도 모두 헉헉댔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오르막길이었다. 괜히 왔나, 그냥 돌아갈까 하는 유혹이 자꾸만 들었다. 그러나 간월재로 가는 길의 경치를 보는 순간 '아, 이래서 힘들어도 모두 올라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꼭 한 번 경험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한 사람이 나보고 멈추라고 하더니 "워메 워째 여자 혼자서 이곳까지 와서까이" 하면서 갑자기 나와 함께 춤을 추자고 했다. 부끄럽기도 했지만 신나게 췄다. 전라도에서 온 부부동반, 너무나 보기에 좋았다. 아마 약주를 한잔하고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헤어질 때 조심해서 타라고 하면서 떡과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이런 것도 여행지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분들의 진심을 받아가니 행복했다. 이게 바로 어떤 피로회복제보다 더 좋은 피로회복제가 아닌가.

올라가는 내내 웃다가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의 억새평원을 보는 순간 환상적인 경치가 발을 묶어 버렸다. 추운데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연신 자연의 냄새를 맡았다. 억새는 별로 없었지만 힘들게 올라온 보상치고는 과분할 만큼 받았다.

이곳 신불산은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고 간월재 주변으로는 해마다 산악자전거대회가 열리는 등 레포츠의 명산이다. 간월재 정상 휴게소에서 컵라면과 커피를 마셨다. 비록 자판기 커피지만 이 세상 어느 커피보다 맛있고 향기로웠다. 등산객이 김밥이랑 포도진액을 줘 맛있게 먹었다. 그날 값으로 계산이 안 될 만큼 감사함을 많이 얻었다.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 하산을 서둘렀다. 아름다운 억새평원 풍경을 두고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올라올 때는 힘들어도 내려갈 때는 신나게 달렸다. 이게 바로 자전거가 주는 매력이다. 만약 중간에 포기했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내려오는 내내 들었다. 그 풍경들을 생각하니 왜 '영남의 알프스'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다음에는 억새가 지기 전에 한 번 더 가야지. 그렇게 힘들게 고생을 했으면서도 그런 다짐을 했다.

그날 밤 바람에 스치는 억새 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아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억새평원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수없이 되풀이해서 보았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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