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탄생 100주년 '미완의 화가' 이쾌대] <중> 그의 작품과 주변 사람들

민족의식 바탕 두고, 인물에 대한 애착 "독자적 리얼리즘 세계 개척"

1991년 10월, 서울 신세계미술관에서 '월북작가 이쾌대전'이 열렸다. 대거 공개된 이쾌대의 작품을 보고 당시 미술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88년 월북화가 해금 이전에는 소수의 몇몇 미술가만이 이름을 알고 있던 존재였지만 전시회가 열리자 '비로소 해방공간 시기의 한국 미술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쾌대(1913~1987년 추정)는 어느 날 '느닷없이' 전시회가 열려, 일약 주목받는 근대작가가 되었다. 해방 전 세대의 작가들은 전쟁으로 인해 당시 작품이 온전히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쾌대의 해방 직전에서 해방공간에 이르는 시기의 작품이 그토록 많은 작품이 남아있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미술관계자들은 평한다. 그 작품들은 어려운 살림과 낯선 세상의 시선에서부터 부인 유갑봉 씨가 지켜낸 결과다. 현재 유화작품은 60여 점, 연필 드로잉은 300여 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갑봉 씨는 월북작가 해금 이전인 1980년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그의 막내아들이 작품을 간직하고 있다.

대구에는 1991년 신세계미술관의 전시가 전국 투어로 1992년 동아쇼핑에 있던 동아미술관에서 열렸고, 1995년 TBC 개국기념으로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린 적이 있다. 2011년 말에는 이쾌대전이 대구미술관에서 열렸다.

◆이쾌대의 작품 세계

미술평론가 윤범모는 이쾌대를 두고 '20세기 한국이 낳은 대표적 유화가'라고 말한다. 또 "그의 리얼리즘 정신은 현실과 민족의 미의식을 기반으로 하면서 전개되었다"면서 "진보적 리얼리즘의 정점에서 독자적 예술세계를 이끈 대가형 화가"라고 평했다.

이쾌대는 그동안 근대작가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이중섭, 박수근과는 조금 맥락을 달리한다. 대구미술관 강세윤 큐레이터는 "모든 작업들 속에는 언제나 작가의 민족의식이 내포돼 있는데, 그것은 주제나 소재로 표현되기도 하고 서양화를 그리는 데 있어 우리의 전통적 조형미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려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면서 "근대작가이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오늘날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현대적 감각이 흐른다"고 평했다.

이쾌대는 특히 인물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 인물의 형태뿐만 아니라 정신과 심리를 담아내려 애썼다. 이쾌대는 작품 '걸인'에서 인물화에 있어 완성된 리얼리티를 확보하게 되는데, 실제로 성북회화연구소 주변에 자주 나타나던 실재 인물인 걸인을 당당하게 묘사해 '낭만주의적 비장함'이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다.

이쾌대는 여러 점의 자화상을 남겨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임도 엿볼 수 있다. 자화상 가운데는 '푸른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이 돋보인다. 중절모에 옥색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의 모습은 자신은 한국인이며 그것도 근대의 한국인이며 화가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 자화상의 배경에는 초목과 야산이 펼쳐지고, 들길을 걸어가는 세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이 배경을 통해 진정한 한국의 화가라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군상 Ⅰ-해방고지'는 해방 전부터 준비해온 작품으로, 인물의 구성과 표현이 우리 근대미술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걸작이다. 서구미술의 거장인 푸생, 제리코, 들라크르와 등의 작품을 연상시키지만, 이들과는 또 다른 독자적 화풍을 보여준다.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모색하는 이쾌대의 의욕에 대해 김용준은 "서구적인 지성과 동양적인 감성을 융화시켜서 민족성을 앙의하는 창작적 열의를 가진 작가"라고 평했다.

이쾌대의 그림에는 스토리가 녹아 있는데, 작품 '상황'은 우리 근대미술에서 유사한 그림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다. '운명' 역시 이야기가 풍부하게 내재돼 있어 해석의 폭이 넓다. '군상 Ⅳ'은 하나하나의 인물이 갖고 있는 좌절과 분노, 희망과 의지에 찬 표정들이 전체적으로 유기적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서사적 구성이나 풍부한 표정의 묘사, 인물의 역동적인 동작, 그리고 인물이 지닌 좌절과 분노, 희망의 의지를 보여준다. 해방이 되어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가는 일련의 사회적 과정을 상징하는 이 그림은 과거와 현실의 혼란과 좌절, 분노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 민족의 과제를 표현한 그림이다. 이런 작품과 시각은 당시 어느 화가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해방공간에서 그려진 그의 작품들은 남한과 북한의 서로 다른 미학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미술의 근대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근대미술사의 올곧은 완성을 위해 그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할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영동은 "초기 그림에서는 민족적인 소재를 구하다가 뒤에 가서 동양화의 평면적인 채색법이나 선묘적인 특징을 탐구하는 쪽으로 나아감으로써 주제뿐만 아니라 방법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부인 유갑봉에 대한 사랑

이쾌대는 부인인 유갑봉을 모델로 한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다. 근대미술가 중 부인을 이쾌대만큼 자주 등장시키는 화가는 없다. 부인은 많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창작활동의 뮤즈이자 인물 연구, 연습의 대상이 되어주었다. 아내는 가장 친숙한 대상이며 그가 가장 즐겨 그린 인물이다. 자신과 아내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에서 그는 그림자이거나 뒷모습이다. 특히 '2인 초상'은 그들 부부를 그린 것이다.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의 아내이며 자신은 실루엣으로 처리했다. 아내에 대한 사랑과 속 깊은 배려가 그림에서는 그렇게 나타났다. 부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작가는 그림자처럼 배경을 이루는 구성에 대해 윤범모 미술평론가는 "페미니즘의 측면에서도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쾌대 주변의 화가들, 이여성과 이인성

이쾌대는 종종 이인성과 비교된다.

이인성은 일제강점하 조선미술전람회가 배출한 인기 절정의 유화가로 성장했지만, 이쾌대는 조선미전을 외면하고 보다 진취적인 활동상을 보였다. 1930년대와 40년대 미술계의 양대 거장인 이쾌대와 이인성은 대구가 낳은 걸출한 화가들인 동시에 다른 행보를 보여 흥미롭다.

특히 이 둘은 수창초등학교 동창생이다. 미술연구자들은 "이 둘이 어떤 관계였는지 상당히 흥미롭다"고 말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고 있어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미술평론가 윤범모는 "일제강점기 대구 미술계의 양대 거장인 이인성과 이쾌대의 예술세계는 흥미롭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인성의 형 이여성은 1920년대 대구화단에서 선구자적 족적을 남겼다. 초기 대구화단에서 유화작품을 출품하는 등 새로운 미술활동에 앞장서기도 했고, 1935년에는 청전 이상범과 함께 소품 100폭 전시를 열기도 하는 등 화가로 활동했다. 이쾌대는 전통복식사와 미술을 공부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형 이여성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이여성 초상'은 맑은 한국화적인 느낌이다.

대백프라자갤러리 김태곤 큐레이터는 "이쾌대는 질곡 같은 한국 현대사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불안함과 초조함, 무력함, 좌절감들이 작품 속에 상징적으로 내포되는가 하면 저항심과 자신감, 그리고 희망이 함께 공존해 있어 독자적인 화풍을 담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