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의 窓] 천년 고도의 짠 기부부문화

모레면 3월이다. 올겨울 추위가 여간 아니었던 탓에 3월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경주의 겨울도 다른 곳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여느 때보다 길고 추웠다. 그러나 지난겨울의 경주 추위가 날씨 탓만은 아닌 듯하다.

최근 경상북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나온 '희망2013 나눔 캠페인(2012년 12월 1월~2013년 1월 31일)' 자료를 보면 추위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얼어붙게 한다. 경주에서 공동모금회를 통한 기탁금은 4억3천200만원이다. 한 해 전 같은 기간의 모금이 4억4천만원이니 매년 그 정도 수준이다.

타 시'군과 비교해 봐도 별로 할 말이 없다. 인구 5만7천여 명의 의성군 6억3천400만원보다 2억원가량이나 적다. 참고로 경주의 인구는 26만 명이다. 예산만도 올해 4천161억원의 의성에 비해 3배(1조250억원) 가까이 많다. 시세로는 상대가 안 되지만 이웃을 돕는 정성은 오히려 의성군에 상대되지 않는 것이다.

의성군에만 뒤지는 게 아니다. 각각 6억2천여만을 모금한 영주시와 영천시에 비해서도 작다. 예천군(2억9천만원) 칠곡군(3억8천만원) 울진군(2억9천만원) 과 비교해도 자랑할 바가 되지 못한다. 인구 대비 거의 꼴찌 수준이다.

경주시가 모금하는 장학금도 마찬가지다. 2009년 발족한 경주시장학회의 현재까지 모금 총액은 30억원이 고작이다. 인구 4만6천 명의 예천군은 1년 만에 100억원을 모았다. 장학금 모금에 3만1천 명이 참여 했으니 거의 전 군민이 모금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경주의 '나눔' 문화가 형편없는 것만은 아니다. 경북지역 아너소사이어티클럽(개인 돈 1억원 이상 기부자모임) 가입자 10명 중 5명이 경주의 기업인이다, 손광락 한의원장과 이상춘 현대강업 대표, 송혜섭 바른이치과의원 원장, 조덕수 제일금속 대표, 익명의 기부자 등이 그들이다. 기부자의 면면을 보더라도 중소기업 또는 개인사업자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대기업이다. 경주는 우리나라의 대표 관광 레저 지역이어서 대기업의 계열사라 할 수 있는 호텔과 콘도 골프장 등 관광레저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H호텔과 C호텔 D콘도 S골프장 K골프장 B골프장, 어린이 놀이시설인 K업체, 영화 촬영시설지로 알려진 M업체 등 경주에서 한 해 수백억원의 관광 수익을 올리는 업체이지만 지난번 모금에 참가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업체들은 관광 수익만 챙겨 본사로 가져갈 뿐 이웃돕기는 외면하고 있다. 행여 이들 업체들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는 거룩한 뜻(?)을 간과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서 여러 차례 확인했지만 역시 실망할 뿐이다. 관광 1번지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 대기업들이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도 1번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주'이채수기자 cslee@msnet.cs.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