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힘들지 않으세요?

부랑인 시설을 맡고 있을 때 그곳엔 아이들도 예닐곱 명 있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부터 6학년까지, 저마다 부모와 살아온 환경이 다른 아이들이 시설이라는 환경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본래 성인들을 위한 시설이라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해서 따로 공동주택에서 전담 직원이 아이들만을 위한 특별한 생활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설 공동체와 조금 격리된 생활공간이라 시설원장으로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보호가 소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사제관 내의 손님방이 제법 큰 공간으로 늘 비어 있어서 그곳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내줬다.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학습지도 풀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측과 상의하여 직접 과외교사가 되어 방과후 지도를 하기도 했다. 때로는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주고, 때로는 아이들의 교사가 되어 주고, 또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기 위해 마음을 기울였다.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매일 저녁 식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주변 산책로를 걷기고 하고,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함께 강둑을 따라 달리기를 하다 보면, 대체로 중간까지만 따라오다가는 포기하고 나 혼자 반환점을 돌아오게 된다. 그러면 무료한 표정으로 터덜거리며 걸어오는 아이들도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나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신부님, 왜 계속 달리기만 하세요? 중간에 쉬었다가 달리면 안 돼요? 계속 달리면 힘들지 않으세요?" 이때다 싶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힘들지만 참는 거지. 너희도 힘들지만 참는 것을 경험해 보라고 끝까지 달리는 거란다." 그 후 아이 중 한둘은 나와 함께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유독 한 아이가 매번 끝까지 나와 함께 완주하거나 오히려 나를 앞질러 달리곤 했다. 대견하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달려주었으면….

삶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나 자주 우리는 힘들지 않고 손쉽게 해결하고자 한다. 포기는 커다란 유혹이다. 굳이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될 충분한 이유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10㎞를 넘게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그 고비만 살짝 넘기면 어느새 다리와 심장이 힘든 느낌을 잊어버리고, 규칙적인 박동으로 달리게 되는 것을 경험하곤 하였다. 스스로 나를 이겨낸 이 경험은 가끔씩 다가오는 삶의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그때 아이들도 그런 체험을 했었기를 바란다. '힘들지만 참는 법', 이기고 나면 얻게 되는 커다란 성취감과 자신감을 맛보기를 기대했다.

이젠 시설을 떠나면서 아이들과 이별하게 되었지만 그 아이 중 몇몇은 대학에 진학하고 다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다들 힘들지만 끝까지 참고 이겨내는 훌륭한 성인들이 되어 주기를….

김상조(대건 안드레아) 신부, 구미직업재활센터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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