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향(50'여'경북 성주시 선남면) 씨는 남편 박기남(57) 씨를 가끔 '나의 오른쪽'이라고 부른다. 김 씨는 남편 박 씨에게 자신의 간 오른쪽 부분을 떼어줬기 때문이다. 김 씨는 남편의 간암 선고와 함께 7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은 지난 1월 5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미 온몸에 전이돼 살 수 있는 날이 일주일밖에 안 된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사흘 뒤 의사 선생님의 '간 이식을 하면 살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주저 없이 저의 간을 내놓기로 했어요."
◆세 번의 죽을 고비
박 씨가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던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박 씨는 12년 전 중증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지금 간 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당시엔 간 이식을 할 돈도 없었고 김 씨가 간을 이식해 줄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도정맥류까지 앓으면서 식도에 심한 출혈도 생겼다. 젊어서부터 배웠던 농기계 수리 기술로 생계를 유지했던 박 씨는 이때부터 일을 접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꾸준한 병원 치료와 김 씨의 극진한 간호로 박 씨의 간경화와 식도정맥류 증세는 점점 호전되는 듯했다. 그러던 지난해 10월, 갑자기 박 씨의 배에 복수가 차기 시작하더니 소화 불량으로 인한 고통이 시작됐다. 박 씨는 결국 지난 1월 4일 집에서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다시 달려가야만 했다. 박 씨는 다음 날 '간암'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박 씨를 살리기 위한 방법은 간 이식밖에 없었던 만큼 김 씨는 더는 고민하지 않고 자신의 간 오른쪽 부분을 주었다. 다행히 간 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회복 속도도 빨라 수술 후 3주 만에 퇴원 준비를 해도 되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박 씨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더니 폐에 물이 차고 심장에도 이상이 생겨 결국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담관염과 패혈증 때문이었어요. 수술 경과도 좋고 회복 속도도 빨라 금방 퇴원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칫 간 이식을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에 주저앉을 정도로 힘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박 씨는 중환자실에서 혈장교환술 치료를 받으면서 차츰 회복됐고, 입원 15일이 지나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잠시 미뤄 둔 꿈
박 씨가 아프면서 생계는 김 씨의 몫이 됐다. 김 씨는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남편을 간호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 일이나 예식장에서의 결혼식 보조와 같은 일용직이 대부분이었다.
남편이 아플 때는 며칠씩 입원해야 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늘 아이들에게 "아버지 상태가 안 좋아지면 바로 연락해라"고 말하고 나서 일터로 나섰다.
김 씨는 박 씨의 병간호를 하면서 한 가지 꿈이 생겼다. 남편이 아플 때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 국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언젠가는 자신도 남을 도우면서 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 간경화에서 회복될 때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 3년간 열심히 공부한 끝에 지난해에는 한 전문대학의 사회복지전공에 합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이 다시 쓰러지면서 만학의 꿈도 잠시 미뤄야 했다.
"남편에게 간을 나눠 준 그 순간부터 '비록 부족한 삶이지만 나눠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잠시 멈춘 것이지만 남편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박 씨 부부의 몸은 점점 호전되고 있지만, 이 부부를 둘러싼 환경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이 병원비다. 부부의 간 이식 수술 비용 2천500만원은 친척과 이웃에게 빌려서 해결했다. 문제는 패혈증과 담관염을 치료하면서 생긴 추가 비용이다. 1천2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더는 구할 곳이 없다.
"빌릴 수 있는 곳에서 이미 다 빌렸어요. 혹시 긴급의료지원비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면사무소를 통해 알아봤지만 이마저도 조건이 안 된다고 해 거부당했어요."
박 씨 부부 수중에 모아놓은 돈도 없다. 농기계 수리 일이 농기계가 빈번하게 쓰이는 철에만 들어오기 때문에 그때 바짝 벌어둔다 해도 한 해를 살기 힘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이 아프면서 김 씨 혼자 생계를 책임지다 보니 아픈 남편 병원비와 집세, 아이들 학비도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어서 돈을 모을 수도 없었다. 6년 전부터 박 씨 부부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정돼 매달 25만원씩 보조금을 받으며 살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살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지금 박 씨 부부가 사는 곳은 지인이 빌려준 땅에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다. 매달 집세를 내며 살던 중 얼마 전 땅 주인이 "3월 말에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당장 살 곳을 마련할 수 없는 이 부부는 땅 주인에게 통사정한 뒤에야 겨우 석 달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에 집을 구하지 못하면 나가야 할 처지다.
박 씨 부부는 12년간의 몸과 마음의 고생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아내 김 씨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내가 남편에게 간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때문만으로도 행복했고, 남편의 수술 경과가 좋아서 행복했고, 남편이 담관염과 패혈증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냈는데도 다시 살아나 줘서 고맙고 또 행복합니다. 이제 남편이 얼른 나아서 집에 돌아가 행복한 삶을 살 일만 남았는데…. 잘 이겨낼 수 있겠죠?"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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