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4년 잉글랜드의 앤 여왕이 후사 없이 갑자기 죽어 스튜어트 왕가의 혈통이 끊어졌다. 비상이 걸린 잉글랜드 조정은 왕위 후계자를 찾은 끝에 앤 여왕의 증조부인 제임스 1세의 외증손자를 점찍었다. 독일의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주인공으로 그는 조지 1세가 되어 하노버 왕가의 첫 왕이 됐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이미 50대 중반의 나이였으며 애초에 하노버 공국의 제후로 지내는 데 만족했고 큰 나라의 왕이 되는 것을 오히려 꺼렸다. 잉글랜드가 외가의 나라였지만 낯설고 물 설어 미지의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마지못해 즉위한 조지 1세는 그릇이 작고 무능했다.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왕비 조피아 도로테아를 잉글랜드에 데려오지 않은 채 독일의 알덴 성에 20년 넘게 유폐시키고 애첩만 싸고도는 야비함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조지 1세는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인기가 없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만 구사하고 영어는 할 줄 몰라 백성으로부터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 1세는 영어에 취약해 국정을 내각과 의회에 맡기는 바람에 역설적으로 영국 의회정치의 발전을 가져왔다. 그를 시초로 역대 영국 왕은 형식적인 권한만 갖추고 정치적 실권은 거의 총리와 내각이 행사하게 됐다.
지난달 30일 당'정'청 워크숍에서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이 청와대 수석들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와 소통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상황에서 그간 입을 닫았던 친박계 의원들이 청와대 참모들을 겨냥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이면을 짚어보면 정권 창출에 기여한 친박계 의원들이 자신들보다 기여도가 낮다고 생각되는 청와대 참모들에 비해 뒷전으로 밀려나는 데 따른 서운함의 표출일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권 초기인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박 대통령의 불통 스타일이 불러온 역설적 효과라 할 수 있겠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던 집권 여당에서 견디다 못해 하고 싶은 말을 함으로써 소란스러우나마 소통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나 홀로 인사'를 통해 강력한 이미지를 쌓는 듯했지만, 지지도가 낮아지는 역효과도 빚어졌다. '불통의 역설'이 새로운 국면을 만든 마당에 박 대통령이 유연해져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만 그걸 기대하기가 쉽지 않으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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