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지상담병(紙上談兵)

'동아시아 기적의 열쇠'라는 저서로 알려진 경제학자 힐튼 루트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가장 큰 차이를 이렇게 정의했다. '모험의 시도나 모험에 따른 시장 리스크를 원만히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구조가 얼마나 신뢰도가 높은지, 또 이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있는지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모험과 혁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선진국을 만드는 힘이라는 말이다.

모험은 높은 성공률이 보장된 영역이 아니라 잘 모르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영역에서 성과와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다. 모험은 속성상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불확실하다. 개발도상국은 이런 모험을 감수하려는 분위기가 희박한 반면 선진국일수록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리스크에 대한 대비가 잘 된 탓에 모험이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개념을 놓고 시끄럽다. 2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최문기 후보자가 "창조경제란 서비스와 솔루션, 콘텐츠와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정치권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면박을 주었다. 야당은 창조경제의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며 보고서 채택도 거부했다.

창조경제는 대략 기술을 융합하고 새 아이디어와 발상으로 시장을 넓혀 성장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모험과 혁신을 하자는 말이다. "경제 성장은 기술 발전을 낳는 혁신에서 비롯되며 기술 발전은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 혁신가의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는 루트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그런데 현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지 뻔한 개념을 놓고 개념 정리한다면서 머리만 싸매고 있는 꼴이다.

'지상담병'(紙上談兵)이라는 고사가 있다.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의 조괄이라는 인물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는 경험이 얕고 경솔한 사람이었다. 조나라 노장 염파의 장기전 전략으로 곤경에 처한 진나라가 조괄 같은 서생이 지휘권을 잡아야 승산이 있다며 계략을 쓰는데 이에 총수가 된 조괄은 해박한 병법 이론만 믿고 섣불리 군사를 움직이다 40만 대군이 생매장되는 비극을 부른 장본인이다. 이 고사의 교훈은 이론이 아니라 실전과 경험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실전 전략에 대한 고민은 않고 개념 공론(空論)만 벌이는 정치권의 지상담병이 너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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