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16>외씨버선길 흘린 땀, 약수탕에서 씻고

옛 보부상이 되어 걷는 김주영 객주길, 끊길 듯 계속되는 고단한 흔적들

오후 2시 30분 주왕산 입구에서 '주왕산-진보(약수탕)'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청송버스터미널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진보면으로 향했다. 승객들이 그대로 타고 있는데 짬을 내 세차를 하는 모습이 꽤 이채롭다. 창밖에서 물을 뿌리니 타고 있던 여중생들이 '꺄악' 소리 지르며 까르르 웃는다.

청송에서 영양, 봉화를 거쳐 영양까지는 외씨버선길로 이어진다. 진보면으로 가는 길에 셋째 구간인 김주영 객주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청송읍에서 용전천을 따라 10분 정도를 달리면 파천면 신기1리 정류장이 나온다. 청송한지체험장 바로 앞에서 내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버스 요금은 3천원.

◆옛 보부상의 흔적을 따라

버스정류장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600m가량 들어가면 김주영 객주길의 시작점인 신기동 느티나무가 나타난다. 감곡저수지까지 2.4㎞ 정도 걷는다. 마을을 통과해 신기천을 건너고 농로를 따라가는 길은 평탄하고 한가롭다.

감곡저수지를 만나면 본격적인 산길이 이어진다. 옛 보부상들이 진보장터에 가기 위해 걸었던 길이다. 청송 출신의 소설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의 무대 역시 진보장터였다. 이른 봄비에 질퍽거리는 길을 따라 돌면 끝자락에 왕버들 군락지가 있다. 흙빛 물속에 뿌리를 내린 왕버드나무 수십여 그루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저수지를 지나면 다시 산길이다. 붉은 빛깔이 도는 땅을 밟으며 걷다 보면 길 아래로 멀리 산마루가 구불구불 일렁인다. 양쪽으로 소나무가 우거진 산등성이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즈음 탁 트인 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너른 정상에는 통나무 정자도 있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숨을 돌리기에 좋다. 길을 따라 걷는데 둥글둥글하고 회색빛의 뭔가가 산 아래로 튀었다. 자세히 보니 멧돼지 새끼다.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새끼가 노는 곳엔 당연히 어미도 있는 법. 재빨리 두 다리를 놀리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뒤통수가 근질근질했지만 차마 돌아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숨차게 걷다 보니 작은 계곡을 건너 수정사다. 고려시대 나옹선사가 지은 고찰이라는데 옛 모습을 찾아보긴 힘들다. 수정사 바로 아래쪽 언덕에는 '황성옛터'를 작사한 이응호 선생의 소박한 묘소가 있다.

수정사 입구에서 짧고 가파른 언덕을 넘으면 비봉산 산행길과 외씨버선길로 나뉘는 갈림길이 나온다. 외씨버선길 쪽으로 접어들면 이내 만나는 곳이 마뭇골이다. 예전에는 진보로 가는 우마차가 다니던 길이었다. 바닥까지 보이는 맑은 마뭇골 저수지를 지나 흔들거리는 통나무 다리를 건너면 긴 오르막이 시작된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훑고 지날 때쯤 너븐삼거리다. 메산 정상 쪽으로 방향을 틀어 700m가량 걷다가 정상에서 왼쪽으로 난 아랫길로 틀었다. 1㎞만 내려가면 청송옹기도막이 있다.

◆오색점토로 빚는 청송옹기

청송전통옹기장 마당은 갓 꺼낸 옹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무남(75'경북도 무형문화재 제25호) 옹기장은 황토를 개어 가마를 손질하기 바빴다. 마당 뒤편에는 가마에 쓸 장작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예전에는 소나무를 주로 썼지만 요즘은 여러 잡목을 사용한다. 사실 옹기에는 소나무가 제격이다. 소나무는 빨리 타고 화력이 높은 데 비해 참나무 등은 오래 타는 대신 화력이 약해 나무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씨가 1년 내내 만들 수 있는 옹기는 400여 개에 불과하다. 흙을 캐다가 반죽해서 모양을 빚고 응달에 말린 뒤 가마에 넣어 굽는 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옹기가 잘 마르지 않는 장마철에는 작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겨울에는 옹기를 말리는 데만 석 달이 걸린다. 건조된 옹기는 천천히 달아오르는 가마 안에서 1주일 넘게 1천250℃의 열을 견뎌야 완성된다. 하지만 온전한 모양으로 빛을 보는 건 열에 예닐곱뿐이다. "요즘은 전통 방식대로 옹기를 굽는 사람들이 없어요. 가스 가마나 기름 가마로 굽지. 기계식 가마에 가스를 때면 아무 흙이나 써도 되고 모양도 반듯반듯하게 나와요. 하지만 그건 전통 방식이 아니죠."

청송 옹기에는 유약을 쓰지 않는다. 대신 재를 태워 거른 양잿물에 약토의 앙금을 섞어 옹기에 바른다. 사과나무재는 누런 빛이 나고 소나무는 검은색이 난다. 그가 만든 옹기들의 표면이 거칠거칠하고 색깔이 아름다운 이유다. 진보면이 청송 옹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건 오색점토 덕분이다. 이 옹기장은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 검은색, 누런색 등 다섯 가지 색의 흙이 한자리에서 나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고 했다. 흙이 여러 종류가 섞일수록 옹기가 불에 잘 견디고 물이 덜 샌다. 건조시키다가 독이 터지는 일도 적다. 가장 힘이 드는 건 불을 때는 일이다. 날씨가 좋으면 1주일 정도, 장마철에는 비가 그칠 때까지 굽는 기간이 늘어난다. "밤낮으로 20~30분마다 불길을 살펴야 해요. 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가스로 구우면 하루면 되겠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지 않아요." 55년 동안 옹기에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부은 장인의 고집이다.

◆"군 복무할 때가 제일 편했지"

옹기를 어루만지는 옹기장의 손은 허연 흙가루가 깊게 박여 있었다. 두터운 굳은살과 거칠게 갈라진 손. 매끄럽고 아름다운 옹기는 차디찬 흙에 갈라져 터진 손끝에서 탄생한다.

그가 옹기를 굽기 시작한 건 열일곱 살 때부터였다. 공부는 국민학교 4학년이 마지막이었다. "가정 형편이 참 어려웠어요. 학교 다닐 입장이 못 됐죠. 학교에 사친회비를 내야 하는데 돈을 안 주니 공부도 안 되고, 학교에 가면 혼나고, 그 길로 학교를 안 갔어요."

옹기장이로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영양군 입암면이었다. 옹기공장을 판다는 소식에 빚을 내 공장을 샀다. 당시 돈 4만5천원. 18세 소년에게 그런 거금이 있을 리 없었다. 마을 유지에게 애원해 한 달 뒤에 돈을 주기로 하고 3만원을 빌렸다. 그 돈으로 계약금을 걸고 가마 속에 있는 옹기까지 모두 샀다. 나무값도 옹기로 주겠다 약속하고 빌렸다. 다행히 첫 달에 낸 옹기가 대박이 났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하며 옹기공장이 안정됐을 즈음 입영 통지서가 날아왔다. 입대를 했지만 머릿속에는 옹기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피땀 흘려 일궈둔 공장이 문을 닫을 처지였다. "중대장을 찾아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토요일마다 집에 보내주지 않으면 탈영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죠. 다행히 마음 좋은 중대장의 허락을 받아서 주말마다 경기도 양평에서 영양까지 내려왔어요." 그러나 애써 지킨 가마는 군 전역 후에 모두 처분해야 했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가마의 3분의 1이 뜯겨 나갔기 때문이다. 얼마 뒤인 1959년 그는 청송군 진보면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돌이켜보면 군생활 3년이 가장 편하게 쉬고 온 때였던 것 같아요. 옹기는 그만큼 고되고 힘든 일이에요."

지금은 셋째 아들 호섭(41) 씨가 그를 돕고 있다. 공업계 고교를 다니던 손자 준연 씨도 올해 동부산대 옹기과에 진학했다. "옹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다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나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마음이 급하고 돈 버는 일에만 급급하니까 배우기 힘들죠."

◆약수찜질방에서 피로 싹

청송전통옹기장에서 진보면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다. 진보정류소에서 괴정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면 진보면 신촌리 신촌약수터에 도착한다. 달기약수터처럼 철분 성분이 강한 약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신촌 약수찜질방이 있다. 약수탕이 특별한 장소다. 찜질방에서 땀을 낸 뒤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흙빛 약수가 담긴 냉탕에 몸을 담그니 탄산에 자극받은 피부가 찌릿찌릿하다. 5분 정도 있으면 찌릿한 느낌은 줄고 몸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10분가량 더 지나니 몸에서 나온 공기가 부글거렸다.

1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찜질방은 마을 주민들이 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운영한다. 수건과 찜질복 빨래와 청소도 모두 주민들의 몫이다. 하루 손님은 25명 선이다. 가격도 찜질은 5천원, 목욕은 4천원으로 꽤 저렴하다. 주말에는 마을 주민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50~60명이 찾기도 한다. 권용희(53'여'영덕군) 씨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오는데 다른 지역 사람이지만 이 동네 사람들이 인심이 정말 좋아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찜질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익을 내진 못한다. 월 매출은 700만~800만원 선. 매달 전기요금 180만원과 연료비 등을 더하면 나가는 돈이 수입과 비슷하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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