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키우는 상담뜨락] 늙으신 부모님은 또 다른 '유아'

4월이 되면 대학마다 학생들의 엠티(MT) 행사가 활발히 진행된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역의 한 노인요양시설을 방문했을 때였다.

'호텔보다 더 훌륭한 시설에서 어르신을 모시는 행복'이라는 문구처럼 그 시설은 청결하고 첨단화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곳을 거의 다 '라운딩'했을 때쯤이었다.

나이 든 남자 만학도 한 분께서 갑자기 창가로 등을 돌리더니 커다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필자는 그 나이 든 제자에게 말없이 티슈를 건네며 가볍게 등을 두드려 주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 그가 말했다. "교수님, 그곳의 시설은 신뢰로울 만큼 좋았습니다. 흔들의자에 몸을 맡긴 채, 창밖의 꽃들을 보고 있는 노인들의 여유로운 모습은 한 편의 멋진 영화 속의 장면 같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그분들의 눈을 들여다보았을 때, 저는 그분들 눈가에 맺혀 있는 회색빛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리움과 분노의 메시지'가 섞인 그분들의 슬픔을 읽었을 때, 저는 울음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시설에서 세상을 떠나신 제 어머니의 그 고독한 모습이 주는 메시지를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요."

자식이 부모에게 효를 다한들 부모가 자식에게 헌신한 모양대로 되돌려 드릴 수야 있겠는가.

우리 어릴 적 아프다고 보챌 때, 어머니는 밤잠을 설치면서 안타까움으로 함께 아픔의 고통을 나누어 주셨고, 밥을 흘리고 먹을 때 지성으로 옆에 앉아 알알이 밥알을 떠 먹여주던 정성이 있었고, 세상의 거친 파도가 덮쳐도 자식만큼은 안고 달아났던 어머니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런데 자식이란 존재는 그 어머니의 사랑을 흉내 내기조차도 어려운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명심보감' 효행 편에서 읽은 한 구절이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았는데 자식이 어찌 내게 효도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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