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 경남 산청군 석대산

노송·기암괴석 어울린 풍수 길지…군데군데 탈출로 체력부담 적어

오랜 가뭄에 목 말라하던 대지가 봄비에 해갈이 되어 활기를 되찾듯, 오랜만에 좋은 산을 만난 흥분이 채 가시지 않는다. 석대산(石岱山)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 경남 산청의 이름 없는 산이다. 석대산의 대(岱)자는 '태산'이라는 의미로 태산같이 큰 바위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다가가서 살펴보고 오르노라면 기암괴석들이 노송들과 어울려 짜임새 있게 태산같이 버티고 서있는 산이다.

산의 높이라야 고작 534.5m, 그동안 지리산의 변방에 위치해 근교의 정수산(841m)과 둔철산(823m)에도 훨씬 못 미치는 높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한국적 길지의 조건에 이상형의 지세를 갖춘 산으로 한번 다녀온 사람들에 의해서 그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100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진자마을회관(경로당)이다. 우측으로 난 농로를 따르면 계단식 논밭을 따라 골짜기 안 밤나무 단지 속으로 길이 연결된다. 마을 입구에서 주능선까지 오르는 데 20여 분이 소요된다. 주능선에서 좌측으로 길을 잡고 오르노라면 빼곡하게 들어선 송림 사이로 소나무의 진한 향기와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세파에 오염된 때를 말끔히 정화시켜 준다.

등산로가 점차 고도를 높이면 암릉이 나타난다. 등산로 주변에 선명하게 피어난 핑크빛 진달래가 소나무 사이에 군락을 이뤘고 천상의 화원을 방불케 한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적송이 군데군데 거대한 분재처럼 독특한 자태로 거대한 암반에 뿌리를 박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산길을 걷는 동안 마치 동양화 속에 빨려 들어간 착각에 빠진다.

바위로 된 아기자기한 등산로를 그대로 따라도 되지만 우측으로 조금만 비켜서면 기암의 조망대가 곳곳에 만들어져 환상의 조망을 누리게 된다. '작은 산, 큰 기쁨'이란 말이 저절로 실감난다. 두세 차례 밧줄을 통과해 뒤돌아보면 좌측 발아래에 진양호와 집현산, 의령의 자굴산과 한우산, 산성산이 펼쳐져 보인다. 그리고 정면 좌측으론 경호강과 월아산, 방어산이 조망된다.

암릉 길이 끝나면 숲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곧 길 좌측으로 작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거기서 바라보는 지리산 남부능선과 지능선 줄기 속의 선인봉이 눈길을 끌고 운리마을에서 이어지는 지리산 둘레길도 보인다. 북서쪽 전방으로 고개를 돌리면 움푹하게 꺼진 한재 좌측으로 지리산 웅석봉이 조망되고, 바로 앞 지척에는 올망졸망한 바위로 형성된 석대산이 관측된다.

헬기장을 지나니 다시 암릉길, 핑크빛 진달래가 한 무더기씩 피어나 군락을 이뤘다. 허물어진 석축을 지나자 석대산 정상이다. 산의 높이에 비해 거대한 정상석이 다소 부담스럽고 제단이 살짝 분위기를 다운시키지만 그런대로 봐줄만하다.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지리산 자락의 지맥들이 웅성거리는 것도 보인다.

정상에서부터 꿈결 같은 등산로가 이어진다. 푹신한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은 비단 길이 간벌을 해야 할 만큼 우거진 송림 속으로 내내 이어진다. 첫 번째 탈출로인 네거리 안부를 지나면 삼각점이 있는 480m봉. 여기서부터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길이다. 곧이어 밤나무 밭이 나타나고 습지도 눈에 띈다. 474m봉은 돌무더기가 있는 바위봉으로 전망대 구실을 하는 곳이다. 좌측 전방으로 시야가 트이면서 청계저수지와 웅석봉이 가까이 다가서고, 우측으로 둔철산과 경호강, 철탑 뒤쪽으로는 정수산과 대성산이 바라보인다.

석천원 가는 안부 네거리를 지나 평탄한 길목 넓은 등산로에서 중식을 한다. 바람이 제법 불어오지만 앉아서 자리를 잡으니 별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오고가는 산객이 거의 없는 호젓한 등산로라 산객들을 의식하지 않고 오붓한 중식 시간을 갖는다.

여유 있게 중식을 즐기고 다시 등산에 나선다. 고압선 철탑과 안동 권씨 묘지 군을 지나면 왼쪽으로 숲길이 나타난다. 잠시 후 좌측 청계마을 산야초농원으로 탈출하는 색다른 이정표가 눈길을 끌고 우측으로 직진하니 석대산 정상보다 34m 더 높은 최고봉 수리봉(568m)이 반긴다. 예전에는 남가람봉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정상석에는 세로로 '석대산 수리봉'이라 적혀 있다.

수리봉에서 보는 조망보다는 상투바위 주변이 훨씬 빼어나다. 암릉길을 조금만 더 진행하면 아슬아슬한 바위봉인 상투바위가 나타난다. 전망이 가장 빼어나고 스릴이 있는 바위능선으로 넘어도 되고 우측으로 우회해도 된다. 다리가 조금 후들거리지만 통과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상투바위에 올라서면 발 디딜 공간이 조금 있어 조망을 즐기기도 하지만 바람이 세찰 때는 필히 조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보였던 모든 조망들이 한꺼번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기이한 바위들이 자웅을 겨루는 암석지대를 통과하면 내림길이다. 다소 가팔라 조심해서 내려야 하는 곳으로 로프가 매여져 있다. 20분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페이스에 따라 코스를 선택한다. 오름길을 계속 직진하면 528m봉을 지나 한재까지 연결되고, 좌측으로 내려서면 15분 뒤 도로와 만난다. 어느 코스를 선택하던 좌측 청계저수지 밑 청계약수터까지 내려서야 한다. 한재에서는 30분, 중간 탈출로에서는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진자마을을 출발해 석대산, 수리봉, 상투바위를 거쳐 한재까지 진입한 후, 청계저수지 밑 약수터까지는 약 8㎞ 거리로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군데군데 탈출로가 다섯 군데나 있어 등산시간과 체력에 부담이 적고 원점회귀 등산이 가능하다. 등산코스를 역으로 잡는 것도 한번 생각해볼만 하다.

산행 후 보물 제72, 73호인 단속사지 동·서 3층 석탑과 밀양 박씨, 성주 이씨, 진양 하씨 등이 수백 년에 걸쳐 형성한 전통가옥들인 남사 고가마을을 둘러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근대불교의 대표 선승인 성철 스님 생가 터에 위치한 기념관과 겁외사를 둘러 볼 수도 있다. 대구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도 오후 6시쯤이면 여유 있게 귀가가 가능하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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