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천위(不遷位).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어다. 불천위란 무엇인가. 불천위란 나라나 유림에서 그 삶과 업적이 후세인들이 영원히 기리며 본받을 만하다고 인정한 인물을 말한다. 시간이 일정 정도 흘러가면 제사를 더이상 모시지 않는 것과는 달리 수백 년이 흐른 지금에도 후손과 후학들이 그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기리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요즘 말로 달리 표현하자면 '불멸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에는 '인문학을 말하다'가 붙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그 자체가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불천위에 오른 인물은 학덕이 뛰어난 사람, 초야에서 공부를 하다 전쟁터에 나아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사람, 벼슬을 하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매진한 사람, 충과 효의 실천이 남달랐던 사람, 선정을 펼쳐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인 사람 등과 같이 무척 다양하다.
불천위 인물들은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았다. 이들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들은 헛된 욕심을 부리거나 명예와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언제나 양심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와 나라에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람답게 사는 법'에 대한 교본이라 할 만하다. 조선의 문신들과 선비들은 살아서는 대제학을 지내고 죽어서는 불천위에 오르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삼았다. 불천위는 보통 한 가문의 시조 내지 중시조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불천위는 모두가 본받을 만한, 훌륭한 삶을 산 인물이라 하겠다.
이 책은 대구경북 출신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조선의 불천위 인물 140명 가운데 51명을 다루고 있다. 이들 51인은 지금도 후손들이 불천위 제사를 모시며 기리고 있는 인물 중 분야별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은 시대적'신분적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을 살았지만, 하나같이 좀 더 나은 사회와 정의를 위해 사심 없이 몸을 던져 불멸의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이들의 삶과 사상, 업적 등을 흥미로운 일화와 함께 담아내고 있다. 불천위 인물의 삶을 이처럼 종합적으로 다루며 조명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지식인의 주류 사상을 정립하는 데 초석을 놓은 김종직,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강직한 삶으로 선비의 사표가 된 김일손, 일흔 살에 전장에 나아가 전사한 최진립, 임금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은 김성일, 녹봉까지 털어 백성을 구휼한 김양진 그리고 이황과 류성룡 등의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청렴결백은 기본이고,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돌보지 않은 공직자의 삶을 살았다. 향촌에 묻혀 있다가도 나라가 위급해지면 전장으로 나아가 구국을 위해 몸을 던졌다. 뜻을 펼 수 없으면 언제든지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과 수양에 매진하고 후학을 교육했다. 또 노비를 가족같이 사랑한 사람, 지극한 효심으로 왜병을 감동시켜 조모를 구한 사람, 자식 교육을 위해 자신의 벼슬길도 접은 사람, 벼슬하는 아들이 보낸 감 한 접을 돌려보낸 사람 이야기 등도 싣고 있다.
이 책은 또 유교문화의 산물인 불천위 제도와 문화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불천위의 의미와 종류, 역사를 비롯해 불천위 신주(神主)와 신주를 넣어 두는 감실, 신주와 감실을 봉안하는 불천위종가의 사당 등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안동의 대표적 불천위 종가(학봉 김성일 종가, 서애 류성룡 종가)의 불천위 제사 참관기, 불천위제도와 관련이 있는 시호(諡號)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동관기자 dkd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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