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야기 속으로] 이사에 얽힌 추억-고향 떠난 지 28년째인 어머니, 이젠 도시인

농사를 지었던 엄마는 농번기가 지나면 자취하던 나에게 진수성찬을 해다 주셨다.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기 바쁜 내 모습에 무척 행복해하시곤 했다. 그렇게 엄마는 1년에 한 번씩 다녀가셨다.

어느 해 겨울, 시골 이웃집 아저씨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엄마가 이웃 마을에 1박 2일로 품앗이를 갔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절해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것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지만 다행히 엄마는 응급조치를 받고 이미 퇴원한 상태였다.

자초지종을 물어보기도 전에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어이 살아갈꼬"라며 대성통곡을 하셨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나도 엄마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울고 난 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안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불은 귀퉁이가 불에 탄 채였고, 쌀가마니는 쏟아져 까맣게 되어 있었다. 또 매캐한 냄새와 함께 장판은 녹아버려 바닥이 훤하게 보였다.

엄마 혼자 계시기에 무서울 것 같아 내 자취방에서 같이 살자고 몇 번이나 설득한 끝에 겨우 승낙을 받았다. 짐을 챙기려니 쓸만 한 게 하나도 없었지만 뒤뜰에 간 엄마는 "아이고 다행이다"하시면서 된장'고추장 독을 보고 좋아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고향을 뒤로하고 대구로 이사 오셨다.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대구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28년째다. 학생이었던 난 듬직한 두 녀석을 둔 엄마가 됐고, 엄마는 텃밭을 가꾸면서 이웃들과 재미있게 살고 계신다.

가끔 친정에 가면 아파트 발코니에 놓여 있는 때묻은 장독대가 지난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때문일까? 엄마도 이젠 농담을 곧잘 하신다. "그때 검은손 그림자가 고맙지. 지금 같으면 농사지으라 해도 못 짓겠다. 하하하."

신분연(대구 동구 신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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