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령 버진 아일랜드는 에메랄드 빛 바다색이 아름다운 카리브 해 동부에 있다. 50개가 넘는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 태초의 신비를 자아내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여기에 미국령과 스페인령 버진 아일랜드가 각각 더해져 버진 아일랜드 군도를 이룬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는 인구래야 2만 7천800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길이 20㎞, 폭 5㎞에 지나지 않는 가장 큰 섬 토톨라에 모여 산다.
버진 아일랜드는 1883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의 소설 '보물섬'의 배경이었다면 이해하기 쉽다. 이곳의 섬 '노먼 아일랜드'를 주민들은 '보물섬'이라 부르고, 해적이 보물을 숨겼다는 동굴도 잘 보존하고 있다.
보물섬에 나오는 노래 '망자의 함'(Dead man's chest) 역시 이곳의 바위섬 '데드 체스트 아일랜드'에서 유래했다. 이 바위섬엔 물도 없고 큰 나무도 자라지 않아 그늘도 없다. 옛날 해적 블랙 비어드(검은 구레나룻) 선장이 각각 단검 한 자루와 럼주 한 병씩만을 주고 부하들을 이 섬에 남긴 채 떠나버린 후 한 달 만에 돌아와 보니 해적들이 거의 다 죽었더라는 전설이 전해 온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2편의 부제 '망자의 함'도 이 섬의 이름에서 따왔다.
최근 버진 아일랜드가 진짜 보물섬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이곳에 금융계좌나 페이퍼 컴퍼니를 보유한 170개국 13만여 명의 명단을 공개하기 시작하면서다. 인구 2만 7천800여 명에 불과한 이 섬에 12만 2천 개의 회사가 등록돼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세금을 내기 싫거나 검은돈을 세탁하려는 페이퍼 컴퍼니들이다. 버진 아일랜드가 전 세계 검은돈이 모여드는 '조세 피난처'로 알려지면서 속 검은 부자들에게 '보물섬' 역할을 제대로 한 셈이다.
ICIJ는 명단 공개를 경제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페이퍼 컴퍼니와의 전쟁이라 표현하고 있다. 페이퍼 컴퍼니로 숨겨진 자산 규모가 전 세계 GDP의 두 배에 이르는 21조에서 32조 달러 사이일 것으로 ICIJ는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70여 명이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ICIJ는 이들의 계좌 보유 관련 해명을 들은 후 2주일 내에 공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보물섬에 돈을 묻어뒀다 떨고 있을지도 모를 이들의 면면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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