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첫 회담 의식 기싸움…제의 자체가 '유화 제스처'일 수도

'格 핑계' 북한, 핵 압박 피하려는 전략 분석

북한이 이달 6일 전격적으로 남북당국 간 회담을 제의하고 나설 때부터 불안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의 파격적인 제의에 대해 '장관급회담'으로 격을 올리면서 역제안했고 이후 실무접촉 때까지도 장소 문제를 둘러싸고도 제의와 역제의를 거듭했다.

남북 양측이 실무접촉에서 7차례나 회의를 거듭하면서 회담의 격과 의제문제를 둘러싸고 진통을 겪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이번 회담의 '격'을 둘러싼 입장차이 때문이었다. 우리 측은 새 정부 들어 첫 남북 간 공식회담인 만큼 첫 단추부터 제대로 꿰야겠다는 입장을 거듭 북측에 강조했고, 북측은 우리 측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은 채 6'15 공동선언 기념행사 등 의제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남북 양측이 별도의 발표문을 통해 12일 무산된 회담의 명칭을 당초의 장관급회담에서 '남북당국회담'으로 하는 것에는 합의했지만 결국 수석대표의 격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발표를 한 것에서부터 회담 무산의 조짐이 보였다.

북측이 이번 회담을 전격 취소한 것은 우리 측 대표의 격을 문제 삼은 것이지만 실제로는 새 정부 들어 첫 회담에서부터 기선을 잡히지 않겠다는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북한이 이번 회담을 제의한 시점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 직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중 간의 북핵문제 압박 등을 의식한 유화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중 양국 정상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한 이상 남북대화카드는 더 이상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 북측이 회담의 '격'을 빌미로 무산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통해 북측이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에 대한 확고한 원칙을 확인한 만큼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해석도 적지 않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핵심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진데다 북측에 대해서도 남북관계에서의 신뢰와 원칙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북측이 회담 대표로 강지영 조평통 국장을 임명하면 우리 측도 류길재 통일부장관 대신 차관급을 내세울 것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격을 문제 삼는 것은 회담을 제의할 때에 비해 회담을 해봤자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와 청와대는 북측의 일방적인 취소로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남북 간 회담에서는 격에 맞지 않는 상대를 내보내는 것은 굴종과 굴욕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북측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이와 관련 "북한이 처음부터 과거에 해왔던 것처럼 상대에 대한 존중 대신 굴종이나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측이 격을 문제 삼은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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