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가을 단풍이 한창이던 지리산. 영호남을 대표하는 지역 진보학회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날로 극심해지는 수도권 집중을 막고 지역의 목소리를 제도화해 보자는 데 의기투합한 인사들이었다. 참가단체는 대구경북을 대표한 대구사회연구소, 부산울산경남을 대표한 부산지역사회연구센터, 광주전남에서 온 광주전남연구회, 전북의 호남사회연구회 등 4곳.
이들은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의 권리를 찾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향후 지속적인 시민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합의했다. 지방분권운동이 바야흐로 씨를 뿌리는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2001년 9월 전국 주요 도시별로 모두 2천757명의 인사들이 동시다발로 모여 '전국 지역 지식인 선언'을 했다. 지리산 결의가 지식인 선언으로 나타난 것.
다시 7개월이 지난 2002년 4월 13일 전국 처음으로 지방분권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가 조직화된 운동 단체로 태어났다. '지방에 자주권과 세원(稅源)을, 결정권까지 지방이 갖자'는 의미의 지방분권이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 순간이었다.
◆대구가 주도한 지방분권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는 먼저 중앙조직이 생겨나고 지방의 하부조직이 뒤따르는 구조다. 하지만 지방분권은 대구에서 지역 조직이 만들어져 이를 전국화시킨 특이한 경우다. 지방분권 하면 대구가 중앙인 셈이다.
지리산 모임과 지식인 선언을 통해 형성된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발전에 대한 지식인들의 공감대가 가장 먼저 대구를 통해 구체화됐다. 이는 다시 말해 대구의 지식인들이 지방분권에 대한 염원이 가장 절실했다고 볼 수 있다.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는 몇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범시민운동이 돼야 한다는 취지에서 공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을 모두 참여시켰다.
대구에서 지역본부가 만들어지고 난 7개월 뒤인 11월 7일 '지방분권국민운동'(이하 국민운동)이라는 전국 조직이 탄생하게 된다. 출범 장소는 경북대. 대구가 지방분권운동의 발현지이자 중심지임을 전국에 선포하게 된 상징적 기념일이다.
지방분권국민운동이란 단체가 만들어진 계기도 역시 가슴에 새길 만하다. 수도권에 맞서서 지방의 이익을 쟁취하자는 취지는 대체로 공감했다. 하지만 대구경북, 부산경남, 강원이 '지방이 주도권을 갖고 권리를 행사하는 지방분권'을 추구했다면 호남은 '지역 균형발전'에 초점을 맞췄다. 지방분권 논리를 대표하는 인물은 경북대 교수이면서 지방분권 전도사로 활약했던 김형기 지방분권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 그는 국민운동이 출범하면서 전국 대표도 역임했다.
분권을 내세울지 균형발전을 앞세울지에 대한 영호남 간의 주장이 팽팽하자 당시 호남 민주화의 대부이던 송기숙 교수가 나서서 김 대표 손을 들어줬다. 논리와 설득력에서 앞선다는 것. 그래서 이 조직의 이름이 '지역 균형발전과 민주적 지방자치를 위한 지방분권국민운동'이 됐다.
국민운동이 출범하면서 부산 강원 충청 등지에서 잇따라 본부가 결성됐고 지방분권운동은 노무현정권 출범과 함께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발족한 대구시 분권협의회도 전국 최초로 조례에 의해 만들어진 기구로 분권 관련 각종 정책을 대구시장에게 자문한다. 며칠 뒤 경북에서도 분권협의회가 생겨났다. 이후 부산 광주 등으로 뻗어나갔다. 이런 조직들이 힘을 합쳐 만든 조직이 지방분권개헌 국민행동이다. 분권을 법률로 뒷받침해도 지역 발전을 견인해낼 수 없었던 것은 수도권의 저항이 워낙 거셌다고 판단한 분권 진영이 헌법을 바꿔 분권 국가로 가는 것만이 지방분권을 완결해낼 수 있다고 판단해 조직한 단체이다. 여기에는 지방분권 진영뿐만 아니라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등 지방 관련 4대 단체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 운동 역시 대구가 주도했다.
◆왜 대구가 주도했을까
다른 지역에서는 대구를 폄하할 때 '보수 꼴통 도시 대구' '고담 대구' '폐쇄도시 대구'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하지만 대구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도시였고, 일제강점기 때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배출했다. 숱한 문인들과 예술인들을 길러냈으며 2'28 민주화운동으로 이승만 정권을 붕괴시킨 민주화의 성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대구에서 지방분권운동이 시작되고 꽃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방분권 대구경북본부 이창용 상임대표는 "대구는 뭔가 새로움을 갈망하는 열정이 강한 도시다. 또 정의를 추구하며 변화와 혁신에 대한 집념이 있다. 여기다 지방분권은 보수나 진보를 떠나 지방민이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 때문에 시작된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지역은 무너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수도권으로만 향하고 있다. 이는 실학의 정신에 위배된다. 대구는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실학의 입장에서 지방분권을 보고 있어 활성화된 것 같다"고 했다.
여기다 중요한 점은 지역 언론의 힘이 강하다는 것도 한 요인. 이창용 대표는 "매일신문을 중심으로 지역 언론이 힘이 강해 여론 전파력이 뛰어난 점이 분권운동을 지속시킨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지방분권운동이 비교적 활발했던 부산 강원도 역시 지역 언론 영향력이 서울에서 발간되는 신문을 능가한다.
최정암기자 jeong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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