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백중과 조상 생각'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이다. 이 세상의 모든 '나'는 이 점에 있어서 같다. 최근 들어 의학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렇더라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부모님은 나를 사랑한다.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사람은 자식을 사랑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본능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나의 아버지를 사랑했을 것이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나의 어머니를 사랑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똑같이 자신의 부모님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더 윗대로 올라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모님은 나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셨다. 당신의 유전자를 물려주었고, 경험과 지식, 성격과 습관까지도 전해주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부모들은 많든 적든 재산도 물려주고,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모든 것은 자식을 통해 후손에게 이어진다. 설령 먼 후손들이 '나'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유전자는 그들에게 오롯이 담겨 있게 된다. 그렇게 '나'는 영원으로 이어진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했듯이, 나도 부모님을 사랑한다. 나의 부모님도 자신의 부모님을 사랑했을 것이다. 개인차는 있을지라도 이 세상의 모든 '나'는 자신의 뿌리에 대해 본능적으로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을 것이다. 유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효도(孝道)라는 이름으로 정형화되었지만, 공자 이전과 공자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지역의 사람들도 자신의 부모를 섬기고 늘그막에 기댈 언덕이 되어주거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요즘 절집은 분주하다. 며칠 후인 음력 7월 보름이 백중이기 때문이다. '우란분절'이라고도 부르는 백중은 우리 절집에서 부처님 오신 날 다음으로 중요한 행사로 꼽힌다. 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그날을 위해 100일이나 49일 전부터 준비하기도 하고, 짧아도 그날만큼은 의례를 정성껏 행한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오늘날에도 불자들은 백중을 계기로 잊고 지냈던 효(孝), 즉 부모를 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백중의 유래는 '우란분경'이라는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란분경'에 따르면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육신통(六神通)을 얻어 열린 지혜의 눈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보았더니, 어머니는 생전에 죄를 많이 지은 업보로 아귀(굶주린 귀신)가 되어 뜨거운 곳에서 물 한 방울 마실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목련은 자기가 얻은 신통력으로 어머니를 아귀의 세계로부터 구하려고 하였으나, 어머니의 죄업(罪業)이 두터워 속수무책이었다.

목련은 어쩔 수 없이 부처님께 어머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스님들이 하안거를 마치는 7월 보름에 과거와 현재 7세(世)의 부모를 위하여 시방의 여러 수행자 스님들에게 정성스럽게 공양을 올리면 비원(悲願)의 성취는 물론, 돌아가신 어머니도 하늘나라의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목련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실천하여 아귀 세상에 떨어진 어머니를 마침내 구원하게 된다. 이것이 '우란분재', 즉 백중의 시초가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 절집에서는 백중날에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경우 조부모부터 증조와 고조까지, 그리고 집안에 자손이 끊어진 친척들, 태중에서 생을 마감한 생명들까지 영단에 위패를 모셔놓고 재를 지낸다. 그러니까 백중은 절집에서 부모를 위하는 날이고,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근원을 따지면 인도에서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이어졌지만, 이 시대 불자들은 이렇게 조상님의 은혜를 기억한다.

'나'는 세상을 떠난다. 인간이 생존하는 한 이 법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의 '나'는 백중을 통해 조상을 기억하는데, 백중의 의미가 현저하게 바래졌을 미래의 '나'는 이 시대의 우리를 포함한 조상을 어떻게 기리고 추모할까?

한북 보성선원 주지 hanbook108@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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