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빈익빈부익부' 불평등 화폐시스템 대안 찾기

화폐를 점령하라/ 마르그리트 케네디 지음/ 황윤희 옮김

내 돈이 다른 사람의 지갑을 배 불린다?

독일 하노버 대학 교수였으며 국제보충화폐운동(무이자은행) 전문가인 마르그리트 케네디 박사의 책 '화폐를 점령하라'는 현재 각국이 사용하고 있는 화폐 시스템은 '불평등'하며, 화폐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람이 화폐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이자 시스템을 해체하고 노동시간과 생산성이 수익의 기반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화폐가 노력이나 능력, 효율성, 혁신에 대한 보상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이 책은 '현재 화폐의 분배 방식은 불공평하며, 소수에게 부를 편중시키고 나머지 다수는 빈곤하고 불안한 생활을 이어간다. 게다가 우리들 스스로 이 불평등한 분배 시스템에 동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화폐의 이자 시스템은 5가지 근본적인 부작용을 갖고 있다. 성장에 대한 집착, 부의 상향 재분배, 위험과 유동성 분배오류, 금융자산 성장과 함께 불어나는 채무, 이런 요인들로부터 발생하는 사회문제 등이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화폐 그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화폐의 원래 목적은 가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한 이익을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같은 원래의 궤도에서 벗어나 대출과 이자 시스템으로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자란 대출을 했을 때에만 지불하는 비용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지은이는 '모든 가격은 이자를 포함하고 있다. 가령 생산자가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계 구입비, 관리비, 서비스 제공만큼의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비용을 위해 대출을 하고, 이자를 지불했다면 생산자는 이자를 포함해 가격을 결정할 것이고, 소비자는 상품에 이자비용까지 포함해서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지은이는 독일 생수가격의 38%, 정부 보조주택 임대료의 77%가 이자비용이었다고 말한다. 2006년 현재 독일 한 가구가 일상 생활용품이나 서비스에 지출하는 평균 이자 부담률은 40%였다고 한다. 이는 독일 한 가구 평균 소득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한다.

최상위 자산가들은 이자로 거둬들인 수익을 다시 금융에 투자해 재산을 늘린다. 이 같은 금융 시스템이 부자를 더 부유하게,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어 양극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책은 이자는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 공인된 사회적 합의인 만큼 또 다른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부자들의 재산을 압수하자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불공평한 화폐 시스템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지은이는 기존 이자 시스템을 대신할 시스템으로 '스웨덴의 JAK은행'을 예로 든다. JAK은행은 대출에 이자를 부과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저축에 금리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이 은행은 저축을 하면 신용이 쌓이고 쌓인 신용으로 대출을 받는 원리를 적용한다. 말하자면 내가 금리 없는 저축을 하여 다른 누군가가 무이자 대출을 받고, 훗날 내가 필요할 때 나 역시 무이자 대출을 받는 것이다.

이자를 대신하는 또 하나의 아이디어로 '디머리지(Demurrage) 제도'가 있다. 디머리지는 내 돈을 금고나 은행에 꽁꽁 묶어두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될 때 지불해야 하는 소액의 수수료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수수료를 내더라도 돈을 묶어두는 게 유리한지,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내놓는 게 유리한지 각자가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디머리지 제도는 돈의 유동성을 높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제도이다.

책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여러 가지 화폐 개념을 소개한다. 시간은행, 병용화폐, 지역화폐, 교육화폐, 글로벌 기준화폐 등이 그런 예다. 책은 이 같은 대체 제도를 실현하고, 현행 화폐 시스템의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또 그것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150쪽, 1만5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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