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증세 정책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어느 시대건 과다한 세금은 민원(民怨)의 대상이었고, 합리적인 세제 개혁은 늘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조선시대에도 몇 차례 세제 개혁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개혁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대동법(大同法)과 균역법(均役法)이다.
대동법의 핵심은 조선시대 지방의 특산물을 호별(戶別)로 부담하였던 것을, 토지의 면적을 기준으로 하여 토지 1결당 쌀 12두를 내게 한 것이었다. 특산물을 내는 것을 공납(貢納)이라 하였는데, 관청의 서리(胥吏)나 장사치들이 중간에 개입하여 필요한 특산품을 미리 사들여 농민에게 비싸게 받아내는 방납(防納) 혹은 대납(代納)의 폐단이 컸다. 임진왜란 후 공납제의 폐단은 더욱 커져서 호피(虎皮) 방석 1개의 대납 가격이 쌀 70여 석이나 면포 200필까지 치솟기도 했다. 그러나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특산물 납부가 쌀로 통일되어 방납의 폐단이 사라지고 세금 징수가 간편하게 되었다. 또한, 토지를 기준으로 함으로써 땅이 많은 지주(地主)가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되었다. '대동'(大同)이란 모두가 공평한 세상을 뜻하는 말로서, 현물로 바치던 것을 쌀로 바치게 한 제도에 이 명칭을 붙인 것은 그만큼 당시 대동법이 획기적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대동법을 주관하는 관청을 '선혜청'이라 한 것에도 '널리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려는' 국가의 의지가 나타난다.
대동법을 처음 실시한 왕은 광해군이었다. 1608년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전란 후의 경제 문제를 개혁하는 방안으로 공납 제도의 개혁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대동법의 전국 확대 실시는 세금 부담이 늘어난 지주들의 저항 등으로 여러 차례 논란에 부닥쳤다. 효종 때에 충청도관찰사 김육은 '안민'(安民)을 강조하면서 충청도에 대동법을 실시하는 것을 실현했고, 이후 대동법은 숙종대인 1677년에 경상도, 1708년 황해도까지 확산하기에 이르렀다. 대동법은 1894년 갑오경장으로 지세(地稅)로 통합될 때까지 조선후기 내내 존속하였다.
공납의 문제는 대동법 실시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나, 군역의 의무를 복무하는 대신에 백성이 내는 군포(軍布)는 17세기 이후 백성에게 가장 큰 세금 부담으로 다가왔다. 1750년(영조 26년) 5월 영조는 양인(良人)들이 부담하는 군역에 관한 규정을 검토하고, 7월에는 유생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다. 영조는 양역의 개선 방향에 대해 면밀한 검토 끝에 균역청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균역법을 실시하였다. 균역법의 주요 내용은 1년에 백성이 부담하는 군포 2필을 12개월에 1필로 내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으로 '반값 군포'를 실현한 정책이었다.
한 집에 장정이 3, 4명이 있을 경우 군포의 값을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20냥 정도가 되었는데, 당시 1냥의 가치는 현재로 환산하면 4만~5만원 정도로 일반 백성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더구나 어린아이나 죽은 사람에게까지 군포가 징수되었고, 이웃이나 친척의 군역도 부담해야 하는 상황도 허다하였다.
균역법의 시행으로 정당하지 않은 방식의 군포 부담을 없애는 한편, 백성의 군포 부담이 반으로 줄게 되었다. 균역법 실시로 국가 재정 수입이 줄어들자 영조는 부족한 재원 마련에도 착수하였다. 우선 양반으로 사칭하면서 군포를 내지 않았던 재력가들에게 선무군관(選武軍官)이라는 명목으로 군포를 내게 하였다.
또한 결작(結作)이라는 세금을 신설하여 지주들에게 1결당 쌀 2말이나 5전(錢)의 돈을 부담하는 토지세를 만들어 양반 지주들의 부담을 크게 하였고, 왕실의 재원으로 활용하였던 어세, 염세, 선세(船稅)를 군사 재정으로 충당하여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였다. 균역법은 백성의 부담은 반으로 줄이면서도, 선무군관포나 어세, 염세 등의 다른 재원을 확보하여 국가 재정을 안정성 있게 유지한 세금 정책이었다.
기업이나 부자에 대한 증세, 소득세 과표(課標) 구간의 조정 등 세금 정책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적지 않다. 대동법과 균역법 시행을 둘러싼 역사적 진통은 현재의 세제 개편 논의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신병주<건국대 교수 사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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