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글쓰기란 기가 막힌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내 책을 읽어주세요'가 아니라 '이런 글을 써보세요'라고 권하고 싶어지더군요. 그 시대의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 그 인물들을 만나는 느낌을 느낄 수 있거든요. 그런 것을 느끼면서 '아, 이걸 진정한 지성의 기쁨이라고 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어요.('읽기만 하는 고전은 소용없다'의 저자 고미숙의 채널 예스 인터뷰 중에서)
고미숙의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를 네 번째 읽고 있다. 연암 박지원이야 오랜 내 친구여서 아주 익숙한 만남인 셈이지만 다산 정약용의 삶을 새롭게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나아가 내 삶의 색깔과 냄새를 규정할 수 있는 책의 속살을 들여다본다는 건 정말 행복하다.
좋은 책은 감각과 지성의 배치가 완벽하게 달라진 어떤 '길'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달라진 '길'이 아주 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울었지만 국화가 피었다는 건 이제 소쩍새의 울음이 끝났음을 뜻하는 것을 아는 정도?
구입한 지 이제 한 달 정도 지난 책인데 페이지마다 연필로 메모된 내 낙서로 가득하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리라이팅'(Rewriting)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내 글쓰기는 저자가 리라이팅한 글을 다시 리라이팅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책을 제법 많이 만나는 축에 속하지만 대체로 읽고 몇 부분을 메모하는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특정한 '길'을 제공하는 책을 만나면 반복해서 그 책을 읽는다. 읽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글에 대해 내 생각을 벼리매김한다. 페이지마다 메모된 내 낙서는 그런 벼리매김의 결과이다. 이런 과정은 무척이나 행복하다. 책에 담긴 속살을 통해 현재 내 삶의 색깔과 냄새를 규정하고 혹시 잘못 규정된 부분은 수정해나간다. 저자가 느낀 진정한 기쁨을 함께 느끼면서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의 삶과 사고를 메모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책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쓰기로 걸어간다. 책쓰기의 공간과 방법은 완전히 열려 있다. 특히 고전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과정이 더욱 필요하다. 물론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대구시교육청 독서 정책이 책읽기에 머물지 않고 글쓰기와 말하기로 확대해 온 과정은 대단한 일이다. 그동안 대구 독서교육을 여기까지 이끈 선배들의 혜안이 고맙다. 독서문화진흥법 제1장 총칙 제2조에도 '독서문화란 문자를 사용하여 표현된 것을 읽고 쓰는 활동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정신적 문화 활동과 그 문화적 소산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분명 '쓰는' 활동도 독서문화의 중요한 영역이다.
지금까지 쓰기 교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창작 교육(문예백일장), 독후감 쓰기, 대입을 위한 논술문 쓰기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가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독후감을 쓰는 정도의 독후활동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강요된 독후활동은 책읽기조차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자기주도적인 쓰기 활동 과정인 책쓰기 교육의 위대함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아는 만큼 쓸 수 있고, 쓰는 만큼 알게 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읽는 만큼 쓸 수 있고 쓰는 만큼 읽는다.
8월 17, 18일 1박 2일 동안 대구교육해양수련원에서 30가족 100여 명이 참가한 '가족 책쓰기 캠프'가 열렸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어려움을 느꼈던 아버지들의 모습이 돋보였다. 가족 간의 소통은 물론, 책쓰기라는 걸 나도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충만했던 시간이었다. 캠프가 마무리될 무렵, 나이가 지긋한 아버지 한 분이 건강음료 한 병을 들고 나를 찾았다. "좋은 시간을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이런 프로그램 계속해 주실 거죠?" 감동이다. 물론 그렇게 할 거다. 이런 행복한 느낌, 이젠 아니까.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