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북성로가 뿜어내는 열기가 뜨겁다. '공구골목'의 대명사 북성로가 간직하고 있는 자산은 산업만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대구 최대 번화가를 이룬 북성로에는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이 건재하며, 최근 대구의 젊은 예술가들이 북성로 근대 건축물 안으로 속속 모여들면서 문화예술의 싹이 움트고 있다. 북성로는 거대한 용광로와 같이 대구의 역사'산업'문화 자산을 한꺼번에 녹여내고 있다.
◆근대 건축물 박물관
대구 도심 도로는 남북으로 나뉜다. 남쪽은 좁고 울퉁불퉁한 도로가 미로처럼 이어지는 반면 북쪽은 넓은 도로가 일자로 곧게 쭉 뻗어 있다.
대구 도심 풍경이 남북으로 나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경부선이 개통되고 대구역이 건립되던 1905년. 읍성 북쪽으로 일본 상인이 몰려들었다. 이듬해 일본인은 당시 대구군수 겸 관찰사 서리였던 박중양을 앞세워 북쪽 성곽을 허물었다. 그 자리가 지금의 북성로다. 일본인 주거지가 된 북성로는 자연스럽게 도심 개발의 중심지가 됐다. 시가지 간선도로 건설과 상'하수도 개발이 북성로 일대로 이뤄졌고 백화점과 양복점, 목욕탕, 시계점 등 다양한 상점이 들어섰다. 어채(魚菜)'미곡시장도 개설되면서 북성로는 대구 최대의 번화가가 됐다.
일제강점기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북성로는 여느 대구 거리와는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대우빌딩 서쪽에서 시작되는 북성로 입구로 들어서면 널찍한 도로 양쪽에 2, 3층 규모의 낮고 좁은 폭의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거리에서 보이는 폭에 따라 세금을 매긴 탓에 폭은 좁게 속은 깊게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다른 특이점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 건물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북향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특성이 담겨 있다. 같은 상가라도 북향 쪽 상가 땅값이 더 비쌌다고 전해진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미나카이(三中井) 백화점 역시 북향이었다.
대구 중구청에 따르면 현재 북성로에 남아있는 근대 건축물은 모두 118개.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로 당시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북성로 전체가 거대한 근대 건축물 박물관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탱크도 만들어내는 공구골목
해방 이후 일본인이 떠나면서 북성로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대구중공업, 조선철공소, 삼화기계, 동일농잠구, 흥업철물 등 기계'철물점과 대성연공업, 종광금속과 같은 금속상이 일본인이 빠져나간 자리를 가득 메웠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물자와 공구, 철물 등을 모아 판매하는 상인들이 북성로로 모여들었다. 인근 서성로가 '깡통골목', 교동이 '양키골목'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가 북성로 일대로 쏟아지면서 북성로에는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말이 생겼다. '탱크도 만들 만큼 없는 게 없다'는 북성로 상인들의 자신감을 드러낸 표현이다.
수백 개의 산업공구 상점이 몰려 있는 공구골목 북성로는 대구 산업의 흥망성쇠와 함께했다. 섬유산업과 중공업이 성장하면서 군수물자 외에 다양한 공구 및 부품 생산 환경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 제3산업공단, 이현공단 등 산업단지가 대구에 들어서자 북성로는 산업용품을 사러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다 섬유산업이 침체되고 검단동에 유통단지가 들어섰다. IMF와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북성로도 침체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북성로는 여전히 활기차다. 350여 개의 산업공구점이 몰려 있는 북성로에는 생산, 가공, 재생, 수리 등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때문에 북성로는 기계 소리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근대와 현대의 공존지대
기계음과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소리로 들썩였던 북성로에 최근 새로운 소리가 뒤섞이고 있다. 책 읽는 소리와 노랫소리, 악기 소리 등. 문화예술거리로 바뀌고 있는 북성로가 만들어내는 합창이다.
북성로에 문화예술을 덧칠하는 작업은 근대 건축물을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구청은 지난 2011년부터 '북성로 근대 건축물 리노베이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 건축물의 원형을 살려 문화 자산으로 활용하겠다는 것.
북성로에 위치한 카페 삼덕상회는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목조건물의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아담한 카페로 꾸몄다. 이곳에서는 예술가들의 사진'그림 전시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올 5월 문을 연 '북성로 공구박물관'도 근대 건축물을 활용해 박물관으로 탄생시킨 사례다. 일제강점기 미곡창고로 사용했던 건물에 실제 공구골목 상인들이 쓰던 렌치'칼'공구 등을 전시해 공구골목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켰다. 2층 다다미방은 공구를 이용한 체험학습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공구와 문화'예술의 결합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북성로는 1950, 60년대 이미 예술가의 아지트 역할을 한 전례가 있다. 북성로 낙원식당 건물에 있던 모나미다방과 맞은편에 있던 백조다방 그리고 북성로 입구에 위치했던 청포도 다방은 피란 시절 젊은 문인들이 창조의 열정을 불태웠던 곳이다. 현재 낙원식당 건물에는 사회적기업가들의 꿈을 키워주는 '북성로 허브'가 입주해 있다. 이 밖에도 북성로에는 미술'음악'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문화'예술 실험 공간으로 사용하는 '스페이스 우리' '예술공장' '장거살롱' '아키텍톤' 등이 있으며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박복환 중구청 도시디자인 담당은 "북성로는 근대와 현대가 공존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으로 예술가들의 러브콜을 많이 받는 지역이다. 근대 건축물에 문화예술 향기가 덧씌워진 북성로는 대구의 이색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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