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영처의 인문학, 음악을 말하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 언젠가 돌아가고픈 마음의 고향

매기의 추억을 부른 대표적 가수인 앤 브린의 앨범 표지.
매기의 추억을 부른 대표적 가수인 앤 브린의 앨범 표지.

마음 둘 곳 없이 허전할 때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외롭고 힘들 때 등을 어루만져주며 위로해 주는 노래들. 그것은 위대한 작곡가의 수준 높고 고상한 작품이 아니라 오래된 팝송이나 매기의 추억 같은 평범하고 소박한 노래들이다. 혼자 쓸쓸히 이런 노래들을 부르며 한줄기 눈물을 쏟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매기의 추억은 우리들에게 흘러간 옛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준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매기의 추억(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은 미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캐나다 시인 조지 존슨의 시집 『단풍잎』에 실려 있던 시다. 존슨은 매기 클라크와 결혼해 클리블랜드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행복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 년도 채 못 되어 매기는 폐결핵으로 죽게 되고, 그는 아내와의 추억이 어린 곳을 떠나 다시 캐나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매기와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시를 쓴다. 이 시는 후에 그의 친구 제임스 버터필드가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들었다.

외국민요 중에는 오랜 세월 동안 불리어지면서 우리 노래로 토착화된 것들이 많다. 클레멘타인, 언덕 위의 집, 산골짝의 등불, 등대지기, 꿈길에서 등등이 그런 노래들이다. 그중에서도 매기의 추억은 가장 한국화 된 대표적인 곡이다. 이 노래는 소박한 가락과 가사로 우리 정서의 아련한 한 부분을 건드린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은 존슨과 매기가 사랑을 속삭이던 동산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들에겐 언젠가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 같은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매기 또한 한때 우리 동네나 이웃 동네에 살았던 아리따운 언니나 누이의 이름인양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매기의 추억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창곡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동창회나 홈 커밍 데이(Home coming day)에 가장 많이 불려지는 노래가 매기의 추억이다. 매기의 추억은 세대를 초월해 전 국민이 거부감 없이 공유하는 추억의 노래가 되었다.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지역에서 비슷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동질감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추억의 힘은 강하다. 추억은 시공간을 초월해 지나간 시간과 사람을 여기 이곳에 되살려 놓는다.

초로의 시인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 전 요양원에 장기 입원 중인 장모를 문병하러 갔다. 한데 병실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장모님은 휠체어를 타고 또래 친구와 복도 저 끝에 나가 있었다. 나란히 창밖을 내다보며 매기의 추억을 부르고 있는 노친들. 두 노인의 뒷모습이 어찌나 다정스럽고 또 쓸쓸해 보이던지. 노래 소리를 따라 걸어가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고.

노래가 가지는 힘은 이토록 대단하다. 매기의 추억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던 한 시절의 추억을 불러온다. 한 곡의 노래가 긴 세월 동안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는 예는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매기의 추억은 개화기 선교사들에 의해 들어와 100년 이상 불리어지면서 거의 우리 노래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1926년 윤심덕이 극작가 김우진과 현해탄에서 정사하기 전, 일축레코드에서 취입한 음반 '사의 찬미'에도 이 노래가 함께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골동품점에서 산 풍금으로 매기의 추억을 쳐본다. 페달이 일으키는 바람 속으로 아름다웠지만 박명했던 매기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옛날의 금잔디 동산'은 사느라 바빠 미처 돌아보지 못한 순수했던 한 시절을 일깨워준다. 가슴속에 '금잔디 동산'을 품고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조용히 옛날의 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서영처 시인'영남대학교 교책객원교수 munji64@hanmail.net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