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어울토론의 철학은 공유와 자율이다

준비물은 잘 챙겨 오셨나요? 시계와 연필, 메모지, 그리고 꼭 이기겠다는 마음을 가져왔다고요?(…) 토론은 세상에 던져진 커다란 질문에 답하는 과정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질문을 던지고, 그 타당성을 따져가는 과정입니다.(…) 이기려고만 하는 토론,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토론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토론,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토론이 시작됩니다. 토론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만나고 새로운 사실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가 몰랐던 다른 생각과 세상의 모습에 자꾸만 더 새로운 질문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최훈'박의준의 '생각을 발견하는 토론학교_철학' 중에서)

시계와 연필, 메모지, 그리고 꼭 이기겠다는 마음. 이것이 일반적으로 토론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준비물이라고 한다. '오전에는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참패했어요. 오후에는 꼭 이길 겁니다.' 2011년 12월 '예비 고3을 위한 토요 디베이트 캠프'에 참가했던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말이었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는 말보다는 이번에는 꼭 이기겠다는 학생의 말이 계속 눈에 밟혔었다.

'쟤들, 우리하고 4강에서 만난 애들인데요, 우리가 졌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요. 우린 완벽한 논리와 지식으로 쟤들을 이겼는데 심판들이 편파적인 판단을 한 겁니다. 그래서 너무 억울해요.' 2012년 6월 선거관리위원회 토론대회에 참가한 모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말. 내가 봐도 그렇다고 옆에 있던 지도교사까지 거들었다.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의 흥분한 목소리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토론은 이기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토론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면에는 똑똑한 내 아이, 남들보다 말을 더 잘하는 내 아이를 만들기 위한 학부모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 과정에서 정말 상처를 받는 것은 바로 당사자인 아이들이다. 상처는 타인의 몫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아이들 자신의 몫이다. 그것이 늘 아프고 아쉬웠다.

토론을 가르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던져진 커다란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질문을 던지고, 그 타당성을 따져가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실제 토론교육 과정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타인을 이기고 싶다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을 넘어서지 못한다. 방법은 단 하나이다. 가능하면 제도적으로 욕망의 발현을 막아내는 방법이다.

대구시교육청의 특화된 토론 프로그램인 어울토론은 바로 그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울토론의 철학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공유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이다. 토론수업, 토론 캠프, 토론 리그는 물론 토론 어울마당까지 논제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다음에는 모든 자료를 공유한다. 홈페이지에는 논제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가 공유된다. '어떻게 이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그러한 방대한 자료에서 집단지성이 발현된다. 결국 그 과정에서 토론을 경쟁을 위한 수단쯤으로 인식하는 단계를 넘어 나를 알고 타인을 이해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공유의 힘은 정말 크다. 토론 홈페이지의 모든 자료는 공유한다. 물론 이러한 공유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고생하여 얻은 내 지식을 타인에게 제공한다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유는 이미 문화로 정착하고 있다. 또 하나는 자율이다. 동아리 활동을 비롯한 지역별 캠프, 리그, 어울마당까지 모두 자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자율적이라고 성과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토론교육의 본질이다. 교육청 성과는 그러한 학교, 지역의 활동들을 묶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교육청의 본질적인 역할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