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준, 이석기, 채동욱. 이 세 사람은 지금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핵심 인물이다. 남재준 국정원장과 이석기 의원은 각각 보수와 진보 진영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혼외자' 의혹으로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신세가 되어 있다.
남재준 원장은 국가의 정보와 안보를 책임지고 있다. 임명 직후부터 그는 국정원의 대통령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시달려야 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은 국정원의 존재 의의와 정권의 정통성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이다. 그 와중에 그는 '용감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전격 공개하여 NLL 논란을 촉발했다. 이 사건은 대화록 존재 여부로 비화되어 검찰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직의 명예를 위해서'라고 대화록 공개 이유를 밝혔으나, 국정원 대선 개입 국정조사에 대한 물타기라는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그는 국가 안보가 아니라 정권과 조직 안보의 수호자 격이었다.
이석기 의원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로 선출되면서 비밀스럽게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 지금의 파란을 예고하듯, 그의 등장 과정에는 부정선거 시비, 국회의원 자격 심사 논란 등 끊임없이 의문부호가 달렸다. 급기야 그는 현역의원으로서 내란 음모라는 경천동지할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 5월 초에 열린 회합에서의 그의 발언과 RO조직의 실체가 사실로 드러나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는다. 진보정치의 기수를 자처한 돈키호테 같은 그의 행동은 진보세력을 몰락시키는 장본인이 되었다. 사건 전개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과 이석기 의원 측이 의원회관에서 장시간 대치했다. 그 광경은 국정원의 존재 이유를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듯하다. 어쨌든 남재준의 국정원과 이석기의 통합진보당이 건곤일척의 진검승부를 하고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지위에 있다. 야당도 어느 정도 신뢰를 보냈으며 국민들의 지지도 받았다. 여기에서 세 사람은 이런저런 관계로 얽히고설키며 한국 정치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런데 채동욱 자신이 시비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 흔들기'라며 저항했으나, 혼외자 의혹이라는 진흙탕의 한복판에 외롭게 서게 됐다. 조선일보는 은밀한 사생활 정보를 어떻게 알고, 왜 이 민감한 시점에 나팔을 불었는가. 왜 법무부와 청와대는 전광석화같이 그를 사퇴로 몰았는가. 이에 대한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국정원이 정보를 흘리고,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재판에 부담을 느낀 청와대가 기획을 했다는 야당의 공세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청와대는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청와대가 국정원의 정보 '공작'에 들러리를 선 형국이 되어 버린다.
진행 중인 재판에서 국정원 선거 개입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내란 음모냐 보안법 위반이냐를 두고 이석기 사건에 대한 법리 해석도 엇갈린다. 만약 이 사건들의 재판 결과가 처음 의도와 다르게 나온다면, 국정원과 청와대의 아픔은 클 것이다. 그 가운데 누가 더 큰 상처를 입을까. 청와대가 아니고 국정원일 것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이석기 사건에 대한 무리한 법 적용이 확인되면, 국정원의 국내 파트 폐지와 수사권 이관이 도마에 오르고, 조직과 기능이 크게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 스스로 밝혔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선거 개입을 직접 지시했거나 보고받은 흔적은 없다. 야당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과 정권의 정통성을 연결시키지 않고 있으며, 국민들도 대통령 선거 무효를 외치지 않는다. 야당과 국민은 국정원을 개혁하여 다시는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여 민주주의가 지켜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국민의 바람대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국정원 개혁을 분리해서 처리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을 개혁하여 과거와의 고리를 끊고 미래를 약속하면, 현재 엉켜 있는 정치의 매듭이 풀릴 것이다. 청와대의 미운털 뽑기로 비치고 있는 채동욱 사건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 이석기 사건도 보다 엄정하고 분명하게 처리될 것이다. 그리 되면 남재준, 이석기, 채동욱도 제자리에 가게 된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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