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수 꿈 이룬 시각장애인 한미옥 씨

장애인 가요제서 최고상 대상 차지

가수의 꿈을 이룬 시각장애인 한미옥(오른쪽) 씨가 남편과 함께 다정히 앉아 있다.
가수의 꿈을 이룬 시각장애인 한미옥(오른쪽) 씨가 남편과 함께 다정히 앉아 있다.

"시각장애인이지만 가수증을 받고 보니 꿈만 같아요.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음악 전도사로 살고 싶어요."

대구에 사는 선천성 여성 시각장애인이 가수의 꿈을 이뤄 화제다. 주인공은 한미옥(44) 씨. 가수증을 받던 날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최근 열린장애인문화복지진흥회 주최 장애인가요제에서 최고 상인 대상을 차지해 가수증을 품에 안은 것. 그는 50여 명의 장애인이 출전해 예선을 거친 본선에서 방주연 노래 '당신의 마음'을 불러 방청객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았다. 20여 년째 안마사 일을 해오고 있는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 실력을 인정해줘 생애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본선이 있던 날 참석하지 못한 대학생 큰딸이 '엄마 떨지 마라'고 문자를 보내왔어요. 남편은 '당신은 잘할 수 있을 거야' 하며 안아주고요. 객석에 앉아 있던 고교생 작은딸도 '엄마 힘내'라며 응원했어요. 우리 가족의 사랑이 큰 꿈을 이루게 한 것 같아요."

사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이 노래를 잘하기란 쉽지 않다. 한 번도 악보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래를 듣고 가사와 박자, 멜로디를 모두 익혀야 했다. 그는 본선이 있기 한 달 전부터 일을 마치면 집에서 밤늦게까지 노래 연습을 했다. 동갑내기 시각장애인 남편이 컴퓨터로 노래 반주를 털어주었다. 간혹 남편은 가사를 외우기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가사를 시각장애인용 점자로 찍어 돕기도 했다. 어느 정도 노래를 익히면 남편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실제 연습을 했다. 부부가 노래방에 갔다 하면 3, 4시간 연습은 기본. 자칭 '매니저'라는 남편은 아내가 노래를 잘 부르면 "잘 넘어가네" "오늘은 잘했어"라며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가수 이용복을 부러워했어요.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한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가수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부터 저의 마음속에도 가수의 꿈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성주가 고향인 그는 어릴 적부터 노래 솜씨가 남달랐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커서 가수가 되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대구광명학교 출신인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수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에는 시각장애인이 부끄러워 라디오 전화 노래자랑에만 출전했다. 또 결혼 후에는 대구시각장애인연합회 흰 지팡이 날 행사나 체육대회, 대한안마사협회 대구지회 노래자랑에 출전해 수차례 입상을 했다. 그는 가수 이미자, 방주연의 노래가 자신과 딱 어울려 즐겨 부른다고 한다. 그는 귀로만 듣고 배우는 노래지만 50여 곡은 자신 있게 부를 수 있다는 것.

"지금껏 자신의 얼굴을 모르고 산다는 게 가장 마음 아파요. 손으로 어루만져 형태는 알 수 있죠. 남편과 예쁜 두 딸이 내 곁에 있지만 볼 수 없는 게…."

그는 음반을 한 번 내보는 게 또 다른 꿈이다. 예쁜 딸들에게 시각장애인 엄마의 당당함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는 전국노래자랑에도 출전해 입상해보겠다는 강한 의욕도 보였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사고에 갇혀 숨어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요. 각자 재능을 살려 노력하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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