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젊음, 규정할 수 없는 동시대 미술

#장면1> 미술과 신입생 환영회. 자리는 노래방으로 이어진다. 신입생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신청곡을 부른다. "오렌지 마말레이드" 2000년에 발표된 '자우림'의 노래다. 신입생이 선곡하기엔 꽤 오래된 곡이다. 언젠가부터 매년 이 노래를 같은 자리에서 듣고는 왜 이 노래일까 궁금해했다. 가사는 이렇다.

"하고픈 일도 없는데 되고픈 것도 없는데 모두들 뭔가 말해보라 해 별다른 욕심도 없이 남다른 포부도 없이 이대로이면 안 되는 걸까?"

#장면2> 현대미술을 가르치는 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어떤 자세로 살아오셨습니까?" 난감한 질문이다. 짧은 순간, 살아온 내 지난 과거를 다 돌이켜보아야 했다. 간단하지만 명료한 대답을 원하는 눈치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정리하고 대답했다.

"그때그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았다."

#장면3> 평소 존경하는 노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느 날 부인이 생활비가 떨어졌다고 말씀을 하시더란다. 그래서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보라 했더니 채 200만 원도 안 남았다고…며칠 고심한 부부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태국 여행이나 갔다 옵시다!"

#장면1>은 젊음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를 주었고 #장면2>는 나 자신의 지난날을 솔직히 되돌아보게 했으며 #장면3>은 비로소 젊음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게 된 장면이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의 노랫말을 들어보면 의지가 부족하고 무기력한 청춘의 모습에 한심한 생각부터 든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저 가사는 젊음의 솔직한 고백이며 젊음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변화된 가치를 온몸으로 느끼지만 그것을 기존의 언어나 개념으로 설명하지 못하기에 불안하다. 젊음은 언제나 변화된 사물과 환경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세상과 부딪치며 새로운 방법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사회 속에서 그 가치를 실증해 나가는 것이 젊음이다. 그렇기에 두렵기도 하고 주변이 온통 모순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젊음의 에너지는 이런 '불안'으로부터 온다. 안정된 물질은 더 이상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았다"는 내 대답에 학생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뭔가 철저하게 준비된 삶 그런 대답을 기대했던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항상 날 이끌어온 것은 강한 '호기심'이었다. 새로운 사물과 사람은 만나면 만날수록 또 다른 호기심들을 유발했다. 내가 계획하거나 예측 가능한 것은 사실 별로 없었다. 하지만 내가 계획하고 만들 수 있는 상황보다 타인에 의해 주어지는 상황이 훨씬 더 풍부한 경험을 제공했다. 어설픈 내 의지를 뒤로하고 그것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이 생겼고 지금의 내가 자연스레 만들어진 것 같다.

사람들이 대가라 하시는 분이 어찌 그리 어려움에 처하셨고, 어떻게 그 상황에서 해외여행 다녀오실 생각을 하셨는지 여쭈었다. 말씀이 "마음속에 걱정과 불안함이 있을 때, 움직여야 할 이유를 찾게 되고, 그 에너지가 항상 새로운 작품세계로 이끈 원동력이었다"라고 하신 후 "나이 드니 그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조바심내지 않고 삶의 동반자로, 꼭 있어야 할 친구로 생각하며 적절히 조절하며 산다"라며 웃으셨다.

이런저런 상품의 마케팅 문구를 보면 미래분석을 통해 예측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말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봐도 투자수익은 미래의 정확한 예측에 의해 얻는 것보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맞닥트릴 때 발휘되는 순발력 있는 대응과 위기관리로 적절히 갱신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얻어지는 게 더 많다. 예측하고 얻은 수익이라면 아주 짧은 기간이거나 우연일 가능성이 많다. 컨템포러리(contemporary: 동시대의, 현대의)라는 형용사가 붙은 것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 미완인 상태로 지속적으로 변화해가는 것들을 다룬다. 그래서 불완전해 보이고, 때론 불편하지만 젊음이 그 속에서 격정적으로 반응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낸다. 이는 우리가 섣불리 규정할 수 없으며, 영원히 공사 중인(under construction) 동시대 미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두희/우양미술관 큐레이터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