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나 소사(小使)'다

우리 동네에 500년이 된 화화나무가 있다. 난 가끔씩 아이들을 데리고 이 나무에게 인사하러 간다."얘들아! 이 나무는 우리 동네의 어르신이며 우리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시다."

아이들은 왜 나무에게 절을 하냐고 묻곤 하지만 난 아무 말없이 웃곤한다. 왜냐하면 500년 된 이 나무가 말을 하기 때문이다. 난 한 번도 나를 교장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나를 그렇게 부르지도 않는다. 영락없이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다하던 '소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청소하고, 나무하러 가고, 토끼풀을 하고 아이들이 내 방에 들어오면 간식을 챙겨준다. 아이들이 서로 우겨대는 고자질도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고, 때론 학부모들끼리의 갈등도 중재하곤 한다. 따로 가르칠 일도 없고, 설교할 일도 없다. 밤과 새벽 사이의 빛깔이, 밤하늘 별이, 햇살과 바람, 낙숫물 소리, 왜가리와 고라니 그리고 꿀벌과 사과나무가 우리에게 말을 걸기에 난 그저 아이들과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동행할 뿐이다. 교육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면 누가 하겠느냐? 교육은 '그냥 함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이 나무 어르신 앞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장자의 나무이야기다. 이 나무가 500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쓸모있는 나무가 되기 위해서 스펙을 쌓고 과외를 하고 성과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뭐 되려고 하지 말아라.' 지금의 이 나무는 지나친 성과 위주의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사는 우리에게 '쓸모없음이 참으로 쓸모있음'을 역설하고 있단다. 너희들! 아궁이에 쉽게 던져질 잔가지가 되지 말고 저렇게 큰 나무가 되어라고….

지난여름 본당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 학교에 캠프하러 온 후배 신부가 있었다. 대뜸 '이 학교에는 어떤 아이들이 들어옵니까'라며 묻는다. 난 이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좀 튀고 다양하고 개성이 강한 까칠한 아이들'이라고 말해줬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요. 문제가 있고 학교에서 부적응하고 모자라는 애들이 아닙니까?" 이 신부의 말과 같이 대안학교에 대한 시선은 아직까지 편견과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뿌리가 깊지 않는 나무가 자리를 잡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듯이 특히 교육이 그렇다 생각한다.

성경에 이런 비유가 있다. 목자가 99마리의 양을 두고 1마리 양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있는데 난 이 비유를 전혀 다르게 '획' 돌려봤다. 상위 1% 즉 명문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죽도록 공부만 하는 아이들도 품어야 하지만, 99% 즉 등급에 들지 못하고 내신도 좋지 않고 특별반도 아닌 못난 나무들을 위한 교육적 동행이 먼저라고 본다. 전국적으로 학교를 가지 않는 중'고등학생이 대략 20만 명, 다양한 대안학교가 생겨야 할 이유이다. 오랜 경험에서 보면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키는 우리의 삶의 현장이 아니던가?

달서구 명곡동에 대안교육센터가 있는데,내 신등급이 낮아지게 하니까 학교에 오지 말았으면 하는 아이, 쟤만 없으면 우리가 좋을텐데 하는 아이, 교사가 느끼기에 제가 학교에 나가 버리면 마치 앓던 이를 쏘옥 빼듯 시원해지는 것 같은 그런 아이들이 오는 센터다. 이 센터를 방문했을 때, 그 후배 신부는 부엌에서 아이들 점심을 해준다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너도나도 교육이 문제라고 늘 떠들어 대는데, 난 그 신부가 말없이 도마에 칼질하는 모습을 보고 '소사'같은 교장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우리 시대의 교육의 의미를 성찰한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산 자연학교 교장 정홍규 신부 comomont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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