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의 초장왕(楚莊王)은 매력적이다. 난세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상당한 성군(聖君)이 됐을 법하다. 즉위 초 3년 동안 꼼짝하지 않아 삼년불비(三年不飛)라는 고사를 남겼고, 절영회(絶纓會)에서는 어떻게 부하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였다.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고픈 욕망도 있었으나 천명과 민심을 얻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충고를 듣자 깨끗이 포기했다.
진(晉)과 싸울 때의 이야기다. 연전연승하자 한 신하가 승리를 널리 알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장왕은 창(戈)을 멈추게(止) 하는 것이 무(武)라는 '지과위무'(止戈爲武)의 비유를 들며 무의 7가지 덕을 말한다. 난폭함을 금하고(禁暴), 무기를 거둬 싸움을 그치게 하고(戰兵), 큰 나라를 보위하고(保大), 공을 세우며(定功), 백성을 편안히 하고(安民), 무리를 화목하게 하며(和衆), 재물을 풍성하게 하는 것(豊財)이다. 진과의 전쟁에서 이 가운데 한 가지도 실천하지 못했다며 사당에만 승리를 알리고 철수했다.
이 일은 뒷날, 군국주의자에게 좋은 먹잇감이 돼 '전쟁을 없애려고 전쟁을 한다'(戰以止戰)는 것으로 변질하고, 전쟁 억지력 확보를 위한 군사력 강화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 다스림과 전쟁을 치름에 늘 명분을 중요시한 장왕이 전쟁 뒤 백성이나 패전국을 대한 조치를 보면, 하늘과 백성을 두려워하고, 역사에 더러운 이름이 남는 것을 꺼렸음을 알 수 있다.
무(武)는 오늘날, 국가 사이에서는 군사력과 경제력이 되고, 한 나라에서는 권력과 돈으로 대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쓰임새가 7가지 덕의 실천이 아니라 자국 이기주의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무너뜨리는 수단으로 휘둘러 지는 데 있다. 이런 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정치판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40여 년이 독재 시대였다. 그나마 군부와 연관 없이 대통령을 뽑은 1992년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을 돌아봐도 민주는 겉 틀이었을 뿐,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야당이 정말 민주주의를 존중했는가는 의문이다. '국민을 위해서' '국민의 뜻'을 들먹이며 반목과 질시로 서로 발목 잡기에 아우성쳤을 뿐이다. 다소 심하게 말하자면 나라와 국민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쟁(政爭)으로 오랜 시간을 허비했고, 아직 진행형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부터 터진 전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진위 문제와 대선과 관련한 국정원 댓글 사건, 또 댓글 수사 외압 논란이 아직도 온 나라를 어지럽힌다. 갑론을박이지만 이 모든 일의 진실은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했다'와 '하지 않았다'가 정반대의 뜻임이 맞다면, 어느 한쪽은 분명히 거짓이다. 그러나 역사에 되비춰봐도 진실 규명이 꼭 능사는 아니었다. 더구나 나라 경영에서 안민(安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욱 아니다.
정쟁은 집권만을 노리는 정당이나, 또는 정치판 끄트머리에서 뭔가 이득을 보려는 집단을 제외한 대부분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다. 꼭 해결해야 할 중대한 정치적 사안이라는 것도 일방적으로 옳다고만 고집하면 때때로 본질은 어디 가고 마치 반대를 위한 반대나 밀리면 안 된다는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는 법이다. 잘못이 없다 해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함이라면 서로 한 발 물러서도 좋겠는데 대통령이든, 야당이든 전혀 그럴 기미가 없다.
2003년 녹색연합이 시작한 우리말 달 이름 쓰기에 따르면 11월을 미틈달이라 했다.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달이라는 뜻으로 들겨울달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12월은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이라 해서 매듭달이라고 부른다. 벌써 미틈달도 반을 넘어 매듭달 앞에 서 있다. 그러나 한 해가 다 가는 지금, 벌인 일의 매듭짓기는커녕 더욱 헝클어지고 복잡해졌다. 정쟁으로 보내는 이 세월이 아깝고, 부끄럽다.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무(武)를 휘두르는 자리가 아닌 야인(野人)의 자리에서, 아무런 무(武)가 없는 국민의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해 보라. 지금의 파탄 정국이 정말 국민을 위한 것인지, 혹시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정쟁을 즐기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보라. 이제는 서로 물러날 명분을 찾고, 상대를 배려할 때다. 천년만년 대통령이고 여당이며, 야당 할 건가?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