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미샤 마이스키(65)가 1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한국 무대 데뷔 25주년 공연을 가졌다. 1988년 첫 방한한 이후 18번째 한국 공연이다.
하얀 사자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이날 오후 5시 공연을 앞두고 3시 30분에 인터뷰를 약속했지만, 약속시간보다 늦은 3시 50분에 나타났다. 일정이 늦어지면서 리허설도 예정된 시간에 하지 못해 인터뷰를 마친 뒤 리허설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시간이 많이 촉박한 상황. 하지만 서두르거나 당황한 기색은 없었다. '까탈스러운' 유명인의 허세도 없었다. 시종 부드러운 태도와 웃음을 잃지 않고 기자의 질문에 성의를 다해 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다
평생을 첼로와 함께한 첼로 거장. 그에게 있어 첼로는 어떤 의미일까? 8살에 첼로를 처음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평생을 첼로라는 악기와 함께하고 있다. 특히 1973년 어떤 독지가로부터 1720년산 몬타니아나 첼로를 선물받은 뒤 40년 동안 같은 첼로로 연주하고 있다.
마이스키는 "거의 내 인생 전부를 함께해 온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단지 '악기'일 뿐이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중요한 것은 음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첼로를 사랑하지만 그것은 피아노나 오르간, 바이올린 같은 악기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음악이라는 것. 마이스키는 "내가 첼로를 얼마나 잘 연주하는가를 보이기 위해 음악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첼로를 활용하는 것일 뿐"이라며 "그것이 왜 내가 완벽한 연주를 추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그는 "음악에는 정말 많은 영역이 있는데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나 노래도 하고 싶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첼로이고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연주 하고파
그에게 자신의 연주를 객관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더니 "내 연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어렵다. 많은 예술가들은 '주관적'"이라며 웃었다. 대신 자신의 음악적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이스키는 "나는 내 연주가 사람들의 '가슴'에 다가서도록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미샤 마이스키보다 명료하고 정확하게 첼로를 연주하는 많은 음악가들이 있다. 그는 "나도 만약에 좀 더 완벽한 연주에 몰두한다면 지금보다 좀 더 기술적인 면에서 정확한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적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은 귀가 아니라 가슴에 다가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사람들이 기술적인 면을 중시한다면 삼성 등 전자제품 기업들이 만들어낸 최첨단 기술력으로 최고의 정교한 연주를 선보일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콘서트에 오는 것은 '감정적인 교류'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무대에 선 아티스트와 관객들 사이에는 상당히 여러 가지 차원의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는데 단순히 귀로 느껴지는 음악이 아니라,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달하는 '감정적인(emotional) 요소'가 바로 좋은 음악가와 위대한 예술가를 구분 짓는 경계가 될 것이며, 이것이 늘 내가 달성하려는 목표"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연주는 늘 새롭다. 같은 곡을 두 번 연속 연주해도 닮은 점을 찾을 수 없다는 자유분방함과 강렬한 개성으로 유명하다. 스스로도 그가 1985년 녹음한 바흐 무반주 첼로와 2000년 연주는 매우 다르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음악은 '생물'(living things)이다. 항상 같을 수가 없다"고 답했다. 악보에서 잠자고 있는 음악을 연주를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주자의 상황이나 시간, 장소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그때(1985년)는 내가 15년이나 젊었기 때문에 좀 더 활기 넘치는 연주를 했지 않았겠나?"라며 웃었다.
◆한국과의 뜨거운 인연
1988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지금껏 25년 동안 18번의 방한 연주회를 가졌다. 42번이나 방문했다는 일본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횟수지만, 그는 분명 한국을 사랑하고 있고 그의 공연은 여전히 전석매진 행진을 이어가는 등 한국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 한국의 소녀 첼리스트 장한나를 세계무대에 올려놓는 데 기여했고, '그리운 금강산' '청산에 살리라' 등 한국 가곡을 자신의 음반에 레코딩하면서 한복을 입고 재킷 사진을 촬영하는 등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 관객들의 반응은 정말 뜨겁다"며 "그것은 김치 때문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명훈 등 정트리오 가족과 장한나 등 매우 뛰어난 한국의 음악인들과 함께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고 밝혔다.
연주회에서는 항상 일본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의 의상을 입는 것으로 유명한 그. 그는 "정장은 불편하다"며 부드러운 블라우스 타입의 의상을 고집한다.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어두운 기억 때문에 아직도 유니폼에 대한 공포가 있다고 했다. 무대 의상으로 검은색 턱시도를 입지 않는 이유다. 이날 공연에서도 일본 이세이 미야케의 의상을 입을 것인가 물었더니 "이번 공연의 의상은 '메이드 인 코리아'"라며 활짝 웃었다. 이태원에 그의 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있다는 것. 이날 공연에서 마이스키는 1부에서는 검은색 셔츠, 2부에서는 은색 셔츠를 선보였다.
◆가족과 함께 호흡 맞추는 행복
이날 마이스키는 딸 릴리(26)와 듀오 연주를 선보였다. 2011년에는 한국에서 아들 샤샤(24)까지 합세해 트리오 공연을 갖기도 했다. 자녀에 대해 언급하자 그는 정말 신이 난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얼굴이 됐다. 벌떡 일어나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사진부터 보여주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막심(9), 마누엘(4), 그리고 9개월 된 마테오의 사진이 가득했다. 한국에 와서도 매일 '스카이프'(화상통화 앱)로 통화를 하는데 마테오가 자꾸 전화기에 얼굴을 들이대고 아빠를 잡으려 한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마이스키는 "지금껏 뛰어난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왔지만, 누구보다 절묘한 호흡을 자랑하는 것은 딸 릴리"라며 "자녀와 함께 연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머지 세 아이들에게도 음악을 가르칠 의향이 있는지 물었더니 "나는 희망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현재 막심과 마누엘은 피아노와 첼로를 배우고 있지만, 축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 그가 보여준 사진에서 막심과 마누엘은 비올라 사이즈 만하게 축소된 첼로를 안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어린 시절 음악을 가르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미샤 마이스키=1948년 라트비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8세에 첼로를 시작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서 기본기를 익힌 뒤 1965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하면서 그를 눈여겨본 첼로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토포비치(1927~2007)에게 발탁돼 모스크바음악원으로 간다. 하지만 1969년 누이와 가족들이 이스라엘로 망명한 탓에 이듬해 18개월 동안 노동수용소에 감금됐다가 2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등 그의 생애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를 겪는다. 그리고 1971년 미국으로 망명한 뒤 본격적으로 연주활동을 시작한다. 1973년 카사도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미국 피츠버그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섰다. 특히 이 카네기홀 연주회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당시 이 공연을 본 독지가가 그에게 1720년산 몬타니아나 첼로를 증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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