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침묵하는 달'에서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로 가기

간혹 새로운 달(月)이 시작될 때 인디언의 언어로 '이번 달은 어떤 달일까?'를 찾아보곤 하지요. 그들의 언어는 자연을 닮아서 사람의 이름은 물론 자연의 현상과 변화까지도 그 흐름과 느낌대로 부르잖아요. 아주 오래전에 나온 영화 중 '늑대와 춤을'을 기억하시나요? 영화를 보지 않았을 때는 '저 뜬금없는 영화 제목이란?' 하며 의아해했었지요. 영화를 본 후에야 '늑대와 춤을'이 백인이면서 인디언들과 진한 우정을 나눈 주인공 '존던바 중위'에게 붙여준 인디언식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늑대와 잘 노는 그를 보고서 붙여준 이름. 그의 연인 이름은 '주먹 쥐고 일어서'고요. 그 영화 이후에 우리들은 인디언식 이름을 붙여 부르기를 유행처럼 즐겼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린 인디언들을 '고요했던 미국의 마을을 습격하고 손도끼 등 원시적 무기로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무지하고 난폭한 종족'이라고 알았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인디언들에 대한 지식이라고 해봤자 서부영화를 통해 본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당연할 법도 하지요. 인디언들의 입장에서 보면 평화롭게 살았는데 어느 날 난데없이 쳐들어온 백인들에 의해 터전을 빼앗겼으니까 저항은 당연한 것이고 그들의 방식대로 싸운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로서 별반 다를 게 없지만 한 방으로 목숨을 앗아가는 총이 더 무섭고 두려운 무기잖아요. 아무튼 서부영화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고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로 바뀌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출됐고 우린 그 영화의 허구에 속아서 인디언들에 대한 적개심마저 들었으니까요.

'늑대와 춤을'을 본 이후, 인디언들에 대한 생각은 확연히 달라졌어요. 삶터를 침범하고 자기들과 문화와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미개인으로 몰아세웠던 침입자들에게 그들의 저항이 얼마나 가련한지요. 한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그 아픔과 설움이 더더욱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인디언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심금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는 거 같아요.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함을 갖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존재한다고 믿고 그런 삶의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 정말 경이롭잖아요.

그래서 내 생애에서는 더 이상 맞을 수도 없는 2013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그들의 언어로 찾아봤어요. 체로키족은 '다른 세상의 달', 크리크족은 '침묵하는 달', 퐁카족은 '무소유의 달', 샤이엔족은 '늑대가 달리는 달', 아파치족은 '큰 겨울의 달', 호피족은 '존경하는 달', 벨리마이두족은 '하루 종일 얼어붙는 달' 등등 부족마다 12월의 이름도 다르더군요. 아무래도 지역마다 기후나 환경 또는 정서가 다르니까 명칭도 다르게 붙였겠지요.

이렇게 인디언의 12월의 명칭들을 찾아보다 보니 그 말뜻들이 슬프게 다가오는군요. 특히 올해는 말이죠. 언제부턴가 우린 상황에 치이고 경제력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이 공권력에 의해 내몰리고 업신여겨지고 삶의 절망 앞에서 울부짖는데도 다른 세상의 일처럼 바라보고, 하루 종일 얼어붙은 가슴으로 살고, 두려움에 떨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거 같아서요. 무소유는 있는 사람에게 있어 더 소중해야 하는데 가진 것이 미미한 사람들에게 무소유를 강요하는 그런 세상인 거 같아서요. 그런 일들이 지금은 다른 사람들의 일이겠지만 어쩌면 곧 나에게도 닥칠 수도 있는 일임을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인디언들이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서로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듯이 우리 인간의 일이라는 게 결국 연결돼 있잖아요.

그러면서 한 해를 보낼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말이,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던 다사다난이 아닌, 생각도 많았고 따뜻함도 많았던 '다사다난'(多思多暖)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그래야 12월의 순우리말인 '매듭달'처럼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매듭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리카라족의 1월인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처럼 우리가 서로 깊은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2014년을 맞을 수 있게요. 그렇게 함께할 수 있을까요?

권미강/대전문학관 운영팀장kang-mom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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