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외과 의사의 하루

오전에 외래 진료를 시작하고 20~30분쯤 지나서였다. 예약이 안 된 환자가 갑자기 들어왔고 부인과 아들이 뒤를 따랐다. 환자는 배가 아프다면서 책상에 엎드렸고 부인은 나를 보더니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낯이 익은 분이어서 기록을 찾아보니 다른 도시에서 오신 74세 환자로 2년 전에 위암 때문에 우리 병원에 와서 내게서 위를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일주일 전부터 배가 아파서 그곳 병원에 입원해 콧줄을 꽂고 물 한 모금 안 마셨는데도 차도가 없어 결국 아침 일찍 출발해 내게로 왔다고 했다. 일단은 외래가 워낙 붐비고 예약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바로 옆 진료실로 모셨다. 거기서 우리 팀의 다른 교수에게 진료를 부탁하고 다시 예약 환자들을 계속 보기 시작했다.

요즘은 예약시간보다 조금만 진료가 지연되면 복도에 설치된 모니터에 지연되는 시간이 표시되기 때문에 여간 당혹스럽지가 않다. 그렇게 가까스로 맞춰가며 정오 무렵 겨우 외래진료를 마치고 점심을 겸한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팀원들에게 오전에 부탁한 환자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창자가 꼬인 것 같아서 응급실로 가서 검사하고 방사선 촬영 중이란다.

내일 수술할 환자들이 막 입원했기에 병실로 가서 인사를 하고 수술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했다. 어차피 자세한 설명과 수술 후에 올 수도 있는 합병증에 대한 불편한 얘기는 저녁에 팀원들이 할 것이다.

나는 "걱정 마세요. 내일은 수술실에서 한숨 푹 주무시면 되고, 그동안에 저만 일하면 됩니다"라고 걱정을 덜어주었다. 지난주 수술한 환자들에게는 "아주 회복이 빠릅니다. 이젠 퇴원해도 되겠는데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물론 회복도 다 되었지만 그 환자들이 퇴원해줘야 수술대기 환자들이 입원할 수 있다. 병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회진이 끝날 무렵 응급실 환자의 결과가 나왔다. 복부 엑스레이, CT 등에서는 장이 꼬였다는 소견은 없었다. 응급실로 가서 다시 환자를 만났다. "아이고, 얼마나 기다렸는데"하며 아주머니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환자의 배를 만져보니 예전에 위를 들어낸 부위에 뭔가가 만져지고 거기만 누르면 아프다고 했다. "사실 검사 결과는 딱히 이렇다 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와 팀원들의 소견으로는 아무래도 창자가 꼬인 것 같습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지만, 만일 꼬였다면 기다려서 풀리기는 힘드니 차라리 지금 수술하는 게 안전하겠습니다."

최첨단 검사 장비들이 즐비해도 결국 마지막 판단은 외과의사의 몫이다. 책임도 그러하다. 아니나 다를까, 한 뭉치로 완전히 꼬여버린 창자를 풀고 수술은 30분 만에 끝났다. 수술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주머니에게 "잘 끝났습니다. 내일부터 물 마셔도 됩니다"하니 다시 펑펑 운다. 팀원들과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를 했다. 올해도 시작이 좋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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