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의 연애편지 속의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지극히 통속적이고 유치한 내용을 읽은 것처럼 '별에서 온 그대'는 내 의식 속에 오랫동안 잊혀 있던 남루한 향수로 다가왔다. 안방극장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고 종영된 별에서 온 그대는 1609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비행 물체 출몰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가의 엉뚱하고도 황당한 상상력이 가미된 픽션 로맨스 드라마다. 400년 전 지구에 떨어진 외계남 도민준과 지구인 톱스타 천송이의 기적 같은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초고속 정보망과 고성능 디지털 기기들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 속에 400년 전 지구에 떨어진 별에서 온 남자가 아직도 살아남아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황당무계한 드라마가 우리들을 웃게 하고 울게 하다니, 문명의 이기에 길들어 있는 수많은 젊은 세대들마저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두 주인공의 러브스토리에 빠져 완판녀 완판남을 만들며 그들을 흉내 내고 있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학자들은 우리의 몸속에 호르몬 분비를 담당하는 내분비선은 행성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고, 점성학적으로 볼 때는 사자자리니 물병자리니 하는 별자리에 따라 운명 또한 달라진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통신기기의 다양한 매력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별은 아직도 신비한 환상을 가진 영원한 노스탤지어로 남아 있는 것일까? 1천억 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은하의 세계, 그 멀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노래했던 젊은 날의 추억들이 새삼 가슴을 설레게 한다. 수없이 많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별이라는 환상은 다가갈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무한의 그리움이었다. 아버지의 등에 업혀 무심히 바라보았던 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던 별을 보며 처음으로 별이 아름답다는 걸 느꼈던 유년 시절. 별을 따 달라고 철없이 졸라대던 나를 지게에 앉혀놓고 기다란 막대기로 별을 따는 시늉을 하며 나를 달래시던 아버지, 따다가 따다가 힘이 들면 지게에 앉아있는 나에게 하늘의 별보다 네가 더 예쁘다며 내 손바닥에 별을 그려주시던 따스한 추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착한 사람이 죽으면 모두 다 하늘의 별이 된다고 이야기하시던 아버지는 나에게 별을 노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감성을 주시고 이승의 별에서 저승의 별로 떠나셨다. 언제나 별은 빛나는 어둠 속에서만 반짝인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다. 1969년에 발표된 이 시는 1970년대의 순수했던 낭만 시대를 찬란하게 풍미했던 전설적인 서정시다. 별을 통해 인간의 절대 고독과 숙명적인 고뇌를 처연하게 노래하고 있다. 밝음 속에 사라진 별 하나와 어둠 속에 사라진 나 하나는 광년의 세월을 건너고 건너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윤회의 궤도 속으로 사라져간 너 하나와 나 하나는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의 뜨거운 심장을 관통하며 사라져간 그리운 별똥별은 어느 별에 닿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기계문명이 주는 삭막한 정서에 젖어 가고 있는 우리의 일상 속으로 문득 찾아온 별에서 온 그대, 그 빛나는 별 하나가 있어 지상의 수많은 꽃들은 더욱더 눈부시게 피어난다. 우리가 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그리워하는 것처럼 어둠 속에 떠 있는 외로운 별 하나도 어둠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별 하나를 그리워했는가 보다. 그러기에 별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떠올리게 하고, 운명에 대한 사랑을 다짐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하늘의 별과 지상의 별은 서로의 운명 속에 헤어졌지만, 오늘 밤도 별은 어둠 속을 헤치며 다시 떠오른다.
잠들지 못하는 밤, 어딘가에 잠 못 이루는 별 하나가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맑고 청아한 빛으로 다가와 이슬처럼 순수한 이야기로 우리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수많은 별의 전설, 별을 향한 우리들의 노래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황영숙/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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