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호색, 얼레지, 노루귀, 처녀치마, 별꽃, 동자꽃, 애기똥풀…, 참 예쁜 이름들이죠. 봄과 함께 피어나는 우리 들꽃들이에요. 우리나라 야생화 중 봄에 피는 들꽃만 100여 종이 훨씬 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많은 꽃이 겨우내 땅속에서 숨을 고르고 몸을 키우며 봄 단장을 한 거지요. 그리곤 단단한 땅을 연한 머리로 뚫고 따뜻한 햇볕을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온 거지요.
연한 보랏빛이거나, 하얀색이거나, 병아리 같은 노란색이거나 품어내는 빛깔도 다르고 동자승에 대한 애틋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거나, 생김새가 처녀치마 같거나, 별을 닮았거나 등등에 따라 이름도 다른데요. 하지만, 봄을 타고 온 이 들꽃들 모두 이성부 시인의 절창 '봄'에서처럼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오고,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그야말로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생명들이기에 더 기특하고 반가운 건 매한가지인 거지요.
곧 들꽃들이 더 밝고 힘차게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4월이에요. 그럼 벌도 나비도 꽃들의 향기를 맡으며 날아들 거예요. 꽃들에게 희망이 되는 4월이 된 거지요. 이쯤에서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떠오르네요. 호랑애벌레와 노랑애벌레가 나비가 되기까지 겪는 모험과 사랑에 대한 내용인데요. 예쁜 그림과 함께 흘러가는 글들이 동화 같지만,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담긴, 아주 깊이 있는 내용이죠.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란 의문을 갖는 호랑애벌레와 모든 애벌레들이 운명처럼 기어오르는 애벌레기둥, 그리고 고치의 고통을 겪은 후 노랑나비로 변신하는 노랑애벌레의 이야기는 자기를 버려야만 온전한 삶을 찾을 수 있다는 변신의 진실을 알게 해주지요. 수많은 애벌레가 애벌레기둥에서 내려와 고치를 만들고 나비의 꿈을 이루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뭔가 나 자신도 고치의 고통을 감내하면 나비처럼 훨훨 세상을 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품게 했는데요. 특히 내용 중에 용기를 꼭 쥐여주는 말이 있어요.
"삶이란 험난한 거야./ 하지만 넌 할 수 있어/ 넌 분명 나비가 될 수 있어/ 기다리는 용기만 있으면 돼."
그 험난한 길을 헤쳐갈 수 있는 열쇠가 기다림이라니, 어찌 보면 참 쉬운 일인 것도 같지만요. 과연 세월을 견디고 기다린다는 게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겠지요. 가장 단순하게 생각한다 해도 봄꽃들이 피어나 아무리 길어도 한 달여를 넘기지 못하고 진 후에, 다시 꽃 한 송이 피울 때까지 세 번의 계절을 땅속에서 견뎌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다림은 숙명 같은 것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다년생 꽃일 경우라고 가정했을 때 말이지요. 결국, 애벌레도, 꽃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 견뎌야만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될 수 있고, 다음해에도 세상 밖으로 나와 예쁜 꽃을 맘껏 피울 수 있다는 거지요. 그게 기다림이고요.
4월, 꽃들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이 희망 하나씩 건져 올리기를 바라면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졸시 한편으로 이번 편지를 마칠게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내 안에 나비가 있다는 것을 몰랐지요/ 나비는 하늘을 날 수 있고/ 날 수 있다는 것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지요/ 희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당신은 삶을 견디려면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알려 주었어요/ 나비는 미래의 내 모습이라고 말해줬어요/ 아름다운 날개로 날아다니며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나비/ 꽃에서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날라다 주는 나비/ 나비가 없으면 꽃들도 이 세상에서 곧 사라지게 될 거라고/ 그러니 나는 꽃을 피울 수 있는 꽃들의 희망이라고
내 안에 나비 한 마리, 날개를 푸득거려요/ 어쩌면 나비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몰라요/ 나비가 되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요/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사랑
자, 두려워하지 마세요./ 삶이란 원래 험난한 거예요/ 꼭대기에 오르려면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야 해요/ 우리들은 모두 나비가 될 수 있어요/ 꽃들에게 희망을 주세요/ 자, 날개를 펴요.
권미강/대전문학관 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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