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兩非論)은 무책임하고 공허하다. 책임을 양쪽에 분산시킴으로써 비판받아 마땅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흐려버린다. 그러나 원자력방호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무산은 양비론을 다시 제기하게 한다. '무산'을 통해 국민은 무사안일에 빠진 무능한 여당과 소아(小我)에 집착하고 정략(政略)만을 탐하는 야당을 재확인한다. 이런 여당과 야당으로 말미암아 국회는 석녀(石女)로 전략하고 국민의 정치 혐오증은 더욱 깊어진다.
1차적 책임은 당연히 여당에 있다. 원자력방호법 개정안은 지난 2012년 8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당은 1년 6개월이 넘도록 방치했다. 이제 와서 '국격'(國格) 어쩌고저쩌고하는 꼴은 참으로 가관이다. 야당의 지적대로 국격에 그토록 중요한 사안이라면 벌써 처리했어야 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새누리당이 원자력방호법 개정안이 '국격'과 밀접한 사안인지조차도 몰랐음을 말해준다. 이런 여당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방송법 개정안의 연계 처리를 들어 원자력방호법 처리를 무산시킨 민주당의 좁은 시야는 더 크게 비판받아야 한다. 국격은 박근혜정부의 것만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이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도 국민이다. 국격에 흠집이 나면 민주당의 격도 흠집이 난다. 더구나 민주당이 연계 처리를 주장했던 방송법 개정안은 방송사 내 편성위원회 설치 문제와 관련해 위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이다. 민주당이 방송법 연계 처리를 포기하고 새누리당의 요청을 들어줬다면 그러한 '대승'(大乘)은 국민에게 더 큰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야당으로부터 이런 되갚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민주당은 아둔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민주당의 처사는 딴죽걸기라는 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선의의 경쟁이 아니다. 상대방에 타격을 안김으로써 그 반대급부만을 챙기는 저열한 '제로섬' 경쟁일 뿐이다. 제로섬은 시너지 효과를 낳지 못한다. 이러한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 식의 경쟁 방식이 한국 정치의 불모성(不毛性)을 심화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국민은 최소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서만은 통 크게 의기투합하는 여당과 야당을 보고 싶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