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스쿠버다이빙-물질과 고래

고래 몸집 비해 성질 온순…향유고래 토사물 고급 향수 재료

물질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고래를 만난다. 자주 만나는 돌고래는 어떤 물고기보다 귀엽다. 돌고래 특유의 생뚱맞은 표정을 보는 날이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전설의 자끄 마이욜도 늘 돌고래와 가족처럼 지냈다. 영화 '프리윌리'의 주인공 스타 범고래 케이코도 아이슬란드의 바다로 돌아갔고, 제주 앞바다에서 정치망에 잡혀 수족관에 있던 고래상어 해랑이도 바다로 돌아갔다. 긴 법적 다툼 끝에 서울대공원에서 바다로 돌아간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와 '춘삼이'도 있다. 고래상어(고래상어는 상어다) 해랑이는 방류 2개월 만에 생체태그가 떨어져 생사 여부는 알 길이 없다.

고래상어는 몸집은 크지만 성질이 온순하다. 그래서 많은 물질꾼들이 고래상어와 놀기 위해 바다로 나간다. 고래상어나 흰긴수염고래는 몸집이 크다. 그러나 이들의 먹이는 몸집에 비해 아주 작은 플랑크톤이다. 이빨고래 중 향유고래라는 것이 있다.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에 나오는 고래다. 대형 이빨고래 중 가장 큰 고래다. 길이만 18m에 달하고 몸무게도 자그마치 60t이 나갈 정도로 큰 고래다. 잠수 실력 또한 뛰어나 한 번 숨에 1시간이나 잠수할 수 있고 수심 2,000m를 오르내리며 대왕오징어를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3대 향료로 침향, 사향, 용연향이 있는데, 용연향은 이 향유고래의 토사물이 10여 년 넘게 바다에 둥둥 떠다니며 해풍과 해수, 태양의 작용으로 만들어진다. 향료 성분을 알코올에 녹여서 추출, 향수를 만드는데 값비싼 물질이다. 용연향은 바다에 오래 떠 있을수록 가격이 비싸 과거 고래를 잡던 시절에는 향유고래의 내장부터 갈라보았다고 한다. 향유고래 수컷이 번식기 때 소화기능이 떨어져 대왕오징어를 소화시키지 못해 생긴다는 설과 창자에 상처가 나서 진주처럼 분비물이 많이 나와 덩어리 형태로 굳어져 생긴다는 설이 있다. 이 돌덩어리 같아 보이는 비싼 물질은 토사물이든 배설물이든 처음에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물보다 가벼워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며 태양과 해수, 대기, 파도에 의해 점차 흰색에서 금색, 검은색으로 변하게 되고 향 또한 점점 은은하게 변하게 된다. 용연향은 또한 동서양 고금에 이르기까지 향수의 원료뿐 아니라 약재, 최음제로 사용되었고, 아라비아에서는 커피에 넣어 먹었고, 프랑스에서는 와인에 넣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 용연향은 유지, 왁스 같은 형태의 기름 덩어리라 불에 잘 붙는 가연성 물질이다. 혹시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름 덩어리 가운데 냄새가 고약하거나 은은한 향이 나는 것을 보면 용연향이 아닌지 꼭 확인하기 바란다.

1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등을 다쳐 실직 상태에 있던 한 영국인이 해안가를 산책하던 중 기름 덩어리를 발견했는데 냄새가 고약해 그냥 지나쳤지만 데리고 간 애완견이 유달리 킁킁대기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용연향인 걸 알고 바로 주워온 일이 있었다. 김홍기 작가는 용연향에 대해 '소화될 수 없었던 매우 아픈 상처나 갈등이 바다의 해풍과 파도, 세월에 의해 위대한 무언가로 다시 태어난 것이 용연향'이라고 했다. 현재는 더러운 물질이지만 언젠가 가장 귀하고 비싼 향기의 재료가 되기까지는 드넓은 바다와 세월이 필요하다는 뜻일 게다.

고경영(스쿠버숍 '보온씨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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