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일상을 벗어나 조금 멀리 나들이했다. 길 나서기에는 좀 늦은 해거름 녘, 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조바심이 재촉했다. 멀다고 해봐야 1시간 남짓이라는 막연한 용기도 한몫했다. 경산 남산면 반곡지(磐谷池). 애바르게 찾아다니는 취향도 아닌데다 계절 변화에 둔감한 탓인지 생소했지만 갑자기 눈으로 확인 해고픈 마음이 들어서였다.
상대온천 가는 길로 향하다 왼편 언덕배기를 넘어서니 꽃들이 온통 시야를 불그스름하게 물들였다. 복사꽃 속에 내려앉은 반곡지의 첫인상은 한 눈에 모든 것을 담을 만큼 작은 포근함이었다. 왕버드나무 연한 초록 잎이 어둑한 시간마저 비웃는 듯했고 못물에 닿을 듯 몸을 숙인 늙은 가지는 또다시 4월의 새잎을 못물에 비추며 보란 듯 생명의 신비를 들려주는 듯했다.
반곡지는 화순 세량지, 서산 용비지와 더불어 봄철 출사지로 이름 난 3대 저수지다. 수령 200~300년 된 20여 그루의 왕버드나무와 주변 복사꽃이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해내서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지만 그 무엇도 압도하지 않고 그럴 의도도 없어 보이는 왕버드나무가 못둑처럼 버티고 선 느낌은 차라리 고즈넉함이었다. 일상 가까이에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명소가 있음이 새삼 어색했다.
못물이 그나마 맑은 4월 중순은 사진 찍기에 적기라고 한다. 해마다 4월 맑은 날 아침나절에 반곡지가 붐비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일찍 기온이 오른 탓에 벌써 복사꽃이 자태를 거두기 시작했지만 꽃은 눈만의 향연이 아니라 오감의 선물이라는 말에서 아쉬움도 순간이었다. 입소문을 탄 때문인지 못 주변에 정자와 다리가 만들어지고 주차장도 말끔히 다듬어 놓았다. 나름 배려가 느껴졌지만 전혀 손대지 않은 반곡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 눈초리가 삐딱하게 돌고 만 것은 그냥 그대로의 아름다움만 눈에 담아 기억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니 젤린스키는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노을진 석양을 바라보며 감탄하기에 가장 적당한 순간은, 그럴 시간이 없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때'라고. 한번이나마 느리게 살아보려고 찾은 반곡지였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지 꽃 냄새만 맡지 말고 직접 꽃나무를 심고픈 마음이 들 때는 언제일는지. 삶에서 특별한 4월로 기억될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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