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송경동(1967~)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시집 『사소한 물음에 답함』 창비, 2010.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고향이 어디인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직장은 어디인지 등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거의 습관적이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지연, 학연 같은 것이야말로 사소한 것이다. 송경동은 '희망버스'를 제안했던 노동자 시인이다.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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