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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희와 함께 떠나는 세계일주] (8) 스페인 바르셀로나

외계로 인도하는 '천재 가우디의 도시'

지금도 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우디의
지금도 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돌을 쌓아 만든 아파트
돌을 쌓아 만든 아파트 '까사 밀라'.
구엘공원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모습.
구엘공원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모습.

스페인이라고 하면 투우와 플라멩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바르셀로나는 그런 것들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대신 가우디와 피카소, 미로 등 예술가를 찾아 나서는 일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가우디의 예술적인 건축물,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는 온난한 기후, 정열적이고 유쾌한 사람들, 타파스와 샹그리아를 내세운 다양한 먹거리까지 바르셀로나의 매력은 끝이 없다. 볼거리가 넘쳐 어떤 것부터 보아야 할지 고민이 앞서지만, 면적이 파리나 런던만큼 넓지 않은데다 바다와 언덕 사이에 자리 잡은 도시이기 때문에 한쪽으로 동선을 잡기 좋다.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해 짜임새 있게 계획을 세우면 하루나 이틀 만에도 명소를 상당수 둘러볼 수 있다.

주요 볼거리는 카탈루냐 광장을 중심으로 한 시내와 시 외곽으로 나뉜다. 그중 백미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둘러보는 것. 상공업 도시였던 바르셀로나는 이를 자양분으로 수준 높은 예술을 꽃피웠는데,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바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여행자가 그의 작품을 보려고 이곳을 찾는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가장 기억에 남고 다시 찾고 싶은 곳 역시 바로 가우디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La Sagrada Familia'성 가족성당)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성당 건물의 위엄에 압도당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내부는 더 놀랍다. 독특하고 기이한 모양의 기둥과 조각, 꽃밭 같은 천장,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살면서 본 적이 없는 독특한 성당이다. 가우디는 엄숙한 분위기의 성당을 유기체처럼 느껴지는 아름다운 숲으로 바꾸어 놓았다.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가 성당을 지탱하고 높은 천장엔 꽃송이가 뿌려졌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는 외계 어딘가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우디는 1883년 성당의 감독직을 수락한 때부터 전차에 치여 사망한 1926년까지 이 작업에 반평생을 쏟아부었다. 그 기간을 포함해 무려 100년이 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가우디가 없는 지금은 300명이 넘는 작업자가 그 꿈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가우디의 원래 계획이 축소되긴 했지만 성당 내부는 상당 부분 완성되었고, 외부는 2030년까지 공사가 계속될 예정이다. 공사비가 기부금으로 충당되기 때문에 완공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한다. 이곳의 인기를 증명하듯 입구는 항상 장사진을 치므로 가능하다면 개관시간인 9시를 노리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가우디의 천재성이 묻어나는 작품 안에서 사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궁금했다. 둘러볼 곳도 많고 번화한 그랑비아 대로에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까사 밀라. 굴곡진 거대한 암석을 파낸 곳에 새들이 둥지를 튼 것처럼 보이는 이 건물은 사실 사람이 사는 아파트다. 잘린 돌을 쌓아서 만들었다고 해서 '라 페드레라'(채석장)로도 불린다. 물결 치듯 구부러지는 외관은 물론, 아름다운 출입구, 외계인에게 점령당한 듯한 옥상에서 가우디의 독창성이 느껴진다. 최상층에는 가우디 작품의 사진과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1층 중앙 문으로 들어가면 종종 무료 전시를 여는 아트 전시장이 별도로 있으니 이것도 놓치지 말자.

구엘공원은 바르셀로나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으므로 미리 공략해 두면 이후의 일정이 좀 더 여유로워진다. 이 공원의 이름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의 이름을 딴 것이다. 형형색색의 타일로 장식한 물결 모양의 벤치, 장난감 같은 기념품 상점, 구엘공원의 상징인 도마뱀 분수 등 곳곳에 개성이 넘친다. 본래 주거용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작업의 어려움과 자금난 등을 이유로 공사가 중단됐고 후에 시가 사들여 지금은 공원으로 개방, 시민들의 쉼터가 됐다. 원래 계획이 무산되고 모두의 공원이 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멋진 공원이다. 공원의 높은 지대에 오르면 바르셀로나 시가지와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우디의 '마력'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정신을 차리면 바르셀로나의 다른 명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성당이 자리한 고딕 지구는 구시가에서도 가장 오래된 지역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시간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좁은 골목과 회색의 각진 건물에서 중세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곳 상징인 대성당은 고딕 양식과 카탈루냐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와는 절대 혼동되지 않는 전통적인 성당의 모습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 이사벨 여왕을 알현했다는 왕의 광장이 성당 근처에 있다.

바르셀로나의 중심인 람블라스 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남쪽 항구까지 연결되는 1㎞의 보행자 거리를 말한다. 볼거리가 많고 호텔, 백화점, 레스토랑, 꽃가게 등이 길게 들어서 있어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세계적인 오페라극장 중 하나인 리세우 극장도, 활기찬 보케리아 시장도 모두 이 거리에 있다. 여기서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시에스타를 경험해보자. 시에스타는 기온이 높은 낮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하는 스페인의 관습이다. 이때는 상점과 박물관 등도 대부분 두세 시간 문을 닫으니 무리해서 구경 다닐 필요 없이 잠시 낮잠이나 즐기자. 이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는 피카소 박물관과 현대미술관, 멀게는 미로 미술관 등 현대미술을 만날 수 있는 흥미로운 예술공간도 많다.

카탈루냐의 성지인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이 산은 암석 절벽에 지어진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특히 수도원 공회당에 있는 검은 마리아 상을 보려고 매년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톱니 모양의 신기한 암석을 보기 위해, 또 다른 이들은 2천 개가 넘는 등산로를 찾아 이 산에 오른다. 이유야 어떻든 햇살 좋은 날 몬세라트에 오르면 피레네 산맥과 지중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푸니쿨라를 타면 거의 몬세라트 꼭대기까지 갈 수 있고,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도원 전경과 주변 경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장관을 이룬다.

글·사진 정영희 전 '대구문화' 통신원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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