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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생각] 살 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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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고향(고령) 마을 거남댁(79)은 다섯 명의 아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셋째가 생각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지만 다섯 명의 아들이 그저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뒷바라지도 변변히 못 해 줬는데 다들 잘 자라 어느 집 자식보다 자기 몫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형제가 마을 행사나 경조사 등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통 크게 찬조금을 내놓을 때마다 "거남댁, 아들 잘 키웠네. 부러워"라는 마을 어르신들의 칭찬이라도 듣는 날이면 하루 종일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거남댁이 얼굴에 환한 웃음기를 띠기까지 장장 50여 년이 걸렸다.

6형제가 어렸을 당시, 10남매도 흔했던지라 6형제는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다. 아들만 둔 것이 여느 집과 다를 뿐이었다. 거남댁은 잔심부름시킬 딸이 없어 다른 아낙네와 달리 혼자 집안일을 해야 했다. 거남댁을 힘들게 한 것은 '가난'이었다. 원인은 장마. 낙동강을 접하고 있는 마을 앞들은 장마만 지면 물이 넘쳤다. 낮은 제방은 큰비만 내리면 넘치거나 붕괴됐다. 거남댁 땅은 그마저도 하천부지에 있어 장마가 지면 애써 가꾼 농작물은 한 줌도 남김없이 물과 함께 떠내려갔다.

이 때문에 거남댁네는 늘 가난했다. 설상가상 남편마저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창 먹을 나이인 형제들은 늘 배가 고팠다. 이들의 책 보따리엔 도시락이 없었다. 상급 학교 진학 역시 꿈도 꿀 수 없었다. 다섯째와 여섯째만이 겨우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기자 친구인 넷째 역시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교와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6형제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잘살기 위해 앞뒤 보지 않고 치열하게 살았다. 고향에서 수박 농사를 짓는 첫째는 부인과 열심히 일해 이제는 마을 최고 부자가 됐다. 집도 산 중턱에서 마을 중심으로 옮겨 번듯한 새집도 지었다. 둘째는 서울에서 사업을, 넷째는 횟집을 경영하고 있다. 다섯째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대구로 나와 속칭 '기름밥'을 먹었다. 손에서 기름 냄새가 떠날 날이 없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현재 종업원을 둔 어엿한 사장이 됐다. 그가 하는 일은 쇠를 정밀하게 깎는 연마. 그는 제품을 만들면서 생긴 쇠붙이를 모아 판 돈으로 홀몸노인 등 어렵게 사는 어르신을 돕는다. 그의 선행이 알려지자 이웃한 업체들도 쇠붙이를 모아 그에게 준다. 그는 또 틈만 나면 고향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거나 후원금을 내고 있다. 비록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동창회 활동도 열심이다. 또한 먼저 세상을 떠난 셋째 형의 형수와 조카도 잘 돌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5형제를 칭찬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래서 세상은 살 만하다"고. 거남댁은 오늘도 아들 생각만 하면 배가 부르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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