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전기의자 사형

발명왕 에디슨은 살아 있을 때 이미 '위인' 소리를 들었다. 그가 발명한 전구와 축음기, 영사기 등 발명품은 하나같이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에디슨의 삶 자체가 훌륭함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었다. 발명가이자 사업가이기도 했던 이 '위인'은 사업을 위해서라면 '한심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고 사업을 시작했던 1800년대 후반, 직류냐, 교류냐의 송전 방식을 두고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다. 에디슨은 양극'음극을 구분해야 하는 직류 방식을 고집했고, 역시 발명가이던 웨스팅하우스는 전극 구분이 필요없는 교류 방식이 낫다고 맞섰다. 두 사람이 정면충돌해 웨스팅하우스의 완승으로 끝나려던 때 에디슨은 '한심한' 발상을 한다.

웨스팅하우스로부터 교류 전기 특허를 몇 개 사들여 전기의자를 만든 것이다. 인간을 죽이는 전기의자가 웨스팅하우스 특허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부각시켜 교류전기를 죽이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교수형으로 사형을 집행했는데 너무 잔인하다 하여 대체수단을 찾고 있었다. 에디슨의 전기의자는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뉴욕 주지사에게 자신의 발명품을 이용해 '사형수들을 고통 없이 인도적으로 처형해 달라'고 로비했다.

에디슨이 만든 전기의자는 1890년 사형수 윌리엄 캐믈러를 사형시키는 데 처음 사용된다. 결과는 에디슨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전기의자는 사형수의 머리와 발에 전극을 대고 1천V의 전기를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8분 동안이나 전기를 흘려보냈으나 사형수는 죽지 않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결국 전기를 2천V로 올려서야 사형집행을 마쳤다. 에디슨의 교류전기 죽이기 전략은 실패였다.

전기의자는 20세기 최고의 사형 방식이었다. 2000년대 들어 사형수에게 독극물형과의 선택권을 주며 전기의자형은 자취를 감췄다.

사라졌던 전기의자형이 미국 테네시주에서 부활했다는 소식이다. 전기의자형 재도입 법안이 최근 의회에서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이 법안은 독극물 공급처이던 EU 국가들이 독극물 수출 중단 조치를 취하면서 불가피했다지만 저변엔 사형수에게 선택권을 줄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국민정서만으로 보면 죽을 방법에 대한 권리를 갖지 않아야 할 사형수는 우리나라에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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