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식민사관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은 하나님의 뜻'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민족' '민족 DNA로 남은 게으름'….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 개혁을 주도할 국무총리 후보자가 한 언사이다. 비록 교회라는 특정 장소에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고, 전체적인 취지는 그렇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민족을 비하하는 역사관에다 배타적인 기독교적 세계관까지 덧대고 있어 더 거북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지성인이자 유력한 언론인 출신 총리 후보의 역사인식이라니 참담하다. 어디 이 한 사람뿐이겠는가. 소위 지식인과 정치인 그리고 사회 지도층의 역사관에 어른거리는 식민사관의 그림자는 그 범위와 농도를 알 수가 없다. 하긴 역대 대통령부터가 그랬다. 역사의 전환기를 열었거나 당대의 지성으로 평가받던 대통령들의 조선시대에 대한 인식에서조차 패배와 문약과 타율과 모방의 역사로 치부하는 식민사관 바이러스 감염 증세가 농후한 판국이다.

이 땅의 지식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조선왕조는 임진왜란 무렵에 진작 망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허다하다. 자기부정의 누추한 역사의식 토로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방된 지 반세기가 넘도록 일제가 남긴 식민사관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지도자와 정치인과 지식인을 가진 사회이다.

남들은 부당한 역사를 미화하고, 없는 사실도 만들어서 자랑하는 마당이다. 자기 나라 역사와 제 조상을 폄하하고 비하하며 서구적인 양식을 가진 게 우등생인 양 으스대온 우리 현대사를 두고 도올 김용옥은 '주체를 상실한 자기배반적 역사'라고 단정했던가. 역으로 '조선왕조가 망하지 않고 500년이나 장수한 비결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왜 없는가.

파란의 역사 속에서 정의의 편에 섰던 숱한 선비들과 조상의 내면을 지배해왔던 유교조차 마땅히 사라졌어야 할 퇴행적 사상과 철학일 뿐이라는 말인가.

자기 역사를 스스로의 눈으로 읽을 줄도 모르는 정신적 노예들이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정부가 무슨 국가 개조를 선도하며 민족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사이비 종교에 물든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듯이, 잘못된 역사관에 빠진 사람 또한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느 역사학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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