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하룻밤에 만리장성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말이 있다. 남녀 간 정분은 그만큼 오묘하고 깊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속담이지만, 만리장성 축조 과정에서 민초들이 겪은 고통과 한을 담은 말이기도 하다. 내용인즉슨 나그네가 어떤 집에서 묵게 되고 그 집 여인네와 하룻밤 정분을 나눈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음날 아침 여인네의 남편으로 오인되어 만리장성 건설현장에 징집되어 끌려갔다는 사연이다.

우리나라에는 만리장성, 피라미드, 앙코르와트 같은 거대 유적이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거대 유적이 없는 우리나라가 참으로 자랑스럽다. 거대 유적의 뒤안길에는 절대 왕권의 폭압에 따른 민초들의 고통과 한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 우리나라는 군주의 폭압적 지시가 통하지 않는 나라였다. 왕은 절대권력을 가진 듯 보였지만 법도와 규칙 안에서만 이를 행사했고, 어길 경우 백성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어느 통치자도 백성의 고혈을 빠는 대형 역사(役事)를 시도하지 못했다. 주요 정책'제도들은 수많은 토론과 협의, 심지어 오늘날의 국민투표와 같은 절차를 거쳐 결정됐다. 사색당파'당쟁이라고 우리 스스로를 비하한 이면에는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이 있었다.

거대 유적 대신에 우리 조상들은 찬란한 기록문화유산을 남겼다. 임금의 행동과 발언은 사관(史官)에 의해 빠짐없이 기록됐다. 작성된 기록은 임금도 열람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연대기인 조선왕조실록은 888책, 5천만 자에 달한다. 불에 타 절반이나 소실된 승정원일기의 경우 현재 남아있는 것만 해도 3천245책, 2억3천만 자 분량이나 된다.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기록물을 남긴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고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

조선의 500년은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다. 또한 우리 민족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노예근성의 '엽전'들도 아니다. 비록 반상제도(班常制度)의 폐해,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부족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 역사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민주성이 도도히 흘러왔다. 이것이 신라 1천년, 고려'조선 각 500년을 가능케 한 비결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식민사관에 물든 일부 지도층 인사들의 역사교육부터 새로 시켜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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