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쇠고기 파동으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던 2008년 6월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권영진 국회의원을 처음 만났다. 국회를 출입하던 기자는 타지역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대구경북 출신 정치인을 릴레이 인터뷰를 했고, 그중 권 의원을 인터뷰이로 만난 것이다. 권 의원은 2004년 총선에서 패한 뒤 절치부심 끝에 2008년 4월 서울 노원을에서 처음 배지를 달았다. 첫인상은 '우직한 경상도 사나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황소 같은 우직함이랄까. 그는 "우직하고 매사에 진지하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했다. 2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권 의원은 "정치인이 선거에 패배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았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이 상처받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앞으로도 지는 선거는 하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주문걸 듯 얘기했다.
5년여 만인 2014년 1월 권 의원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새누리당 대구시장 경선 후보였다. 경선 기간 권 후보는 전형적인 정치인이었다. 정치의 공급자가 정치인이라면 수요자는 유권자다. 권 후보는 수요자가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간파하고 그들이 원하는 말을 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도 뛰어났다. 정치인에게 적당히 필요한 소신을 꺾지 않은 고집도 있었다.(물론 측근들은 황소고집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권 후보는 경선 기간 '정치시장'이 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했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배운 후보는 정치를 통해 대구를 바꾸겠다고 했다. 주변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대구시장에 당선됐다.
정치인 출신 대구시장은 낯설다. 역대 대구시장이 모두 행정관료 출신이어서 더욱 그렇다. 정치시장은 양날의 칼이다. 권 시장이 정치시장을 공언한 것은 기존 행정시장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의도다. '예산이 없다. 선례가 없다. 규정이 없다'는 얘기가 대구시 공무원 입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정치시장'에 담은 것이다.
정치인은 묘한 구석이 있다. 난마처럼 얽힌 갈등을 해결하고, 막힌 곳을 뚫고, 무에서 유를 만드는 등 기존 상식으로 쉽지 않은 일을 척척 해결하는데 짜릿한 쾌감을 느낀다. 이를 진정성, 추진력, 소신 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재주도 지녔다. 성과물을 시민들에게 꼭 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다. 행정관료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법과 규정을 귀찮은 규제로 보고 필요하다면 고치면 된다는 생각도 한다.
인사에서도 정무 능력이 있는 인물을 선호한다. 권 시장과 함께 대구시에 들어간 비서실장과 정책보좌관들은 모두 국회와 청와대에서 정무 훈련이 된 인사들이다. 여기에 정책 능력이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정책 능력만으로 정치시장의 눈에 들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 같은 정치인의 장점이 극대화될 때 성공한 정치시장이 될 수 있다. 정치시장이 장점만 있는 게 아니다. 정치시장이 자신의 정치적 진로를 최우선 고려할 때 행정은 제 갈 길을 잃는다.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나타날 수 있고, 전시행정에 치우칠 수 있다.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가 지나치게 확대돼 소모적인 정쟁으로 옮아간 배경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이 한몫했다는 얘기도 있다. 선거 기간 만난 김범일 전 대구시장은 기자에게 "대구시장이 정치를 제일 우선하면 시민이 불행해진다"고 했다.
권 시장이 정치시장으로서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면서 실수를 최소화하는 것은 본인의 역할이다. 그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은 시민에게 주어진 너무나 중대한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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