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아,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시집『바리연가집』 실천문학사, 2014.
모든 존재는 관계 맺음 속에 있다. 빈 의지가 있어 앉을 사람이 있고 신발이 있어 걸어갈 길이 있고 절망이 있어 희망이 있다. 사랑도 그러하다. 그가 지금 없기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상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사유 속에서 깨닫는 것이리라. 나를 힘겹게 하는 사람이여, 너를 사랑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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